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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논산군 연산면 고정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광산김씨의 마음의 고향충남논산군련산면설정리.이조중기 광해군의 힝포가 심해지고 국정이 흔들리자 사계 김장생이 벼슬을 버리고 초야에 묻혀 은거했던곳. 대둔산 황령이 병풍처럼 둘러친 아늑한 분지에40여가구 「광김」들이 처마를맞대고 올망졸망 모였다.
이마을에 최초로「광김」의씨를 뿌린 인물은 이조건국초기 충청도관찰사를 지낸 김야채.마을전체 70여가구중 40여가구 2백여명이그의 후손들이다. 또한 논산군 일윈 약 2천여 가구가 모두 「광김」의 씨받이들.
이마을의 내력을 설명하면서 정경부인 허씨의 정절을 빼놓을수 없다. 허씨는금야채의 의아들 김문의 부인. 결혼후 금문이 20세의젊은나이로 타계하자 허씨는 천상과부가 된다.
당시 허부인은 송경 (개성)에서 살고있었는데 딸의처지를 가엾게 여긴 친정에서 끈질기게 개가를 종용한다. 그러나 허부인은 끝내 이를 거절, 남편의 고향인 고정리로 내려와 외아들 철산을 키우며 수절한다.
그후 홀어머니 밑에서 장성한 철산은 이조 성종때좌의정에 오른 김국광과 김겸광등 4형제를 낳았으니「광김」의 번영의 신화는 이때부터 시작된 것. 국광의5대손이 바로 김장생이기때문이다.
『허씨할머니는 열녀 중의열녀여. 친정에서 재가를 시키려니깐 몰래 외아들을 업고 도망을 쳤는디 송경에서 향정리까지 꼬박 보름이 걸렸어. 그런디 신통한것은 밤이되면 범이나타나서 길안내를했다는거여.』김리중(79)노인은 지금도마을 뒷산에 범넘이고개(범이고개를 넘었다해서…·)가있다면서 『허씨할머니가 외아들 성산을 버리고 개가했더라면 「광김」의 번영은불가능했을것』 이라고 말한다.
마을 중앙에 아담하게 자리잡은 정문(정문)은 허씨의 정절을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세운 열녀문. 정문믈 비껴서서 마을의 수문장처림 우람히 선 4백년고목의 무성한 잎새가 그녀의 곧은 정절처럼 푸르다.
장생의 13대종손 김길중씨(61)의 종가를 찾는다.
이끼오른기와, 퇴색한 단청,14칸규모의 고색참연한고옥이 명문가의 종가집으로서 손색이 없다.
길중씨는 『이조5백년동안숱하게 왕조가 바뀌고 귄력이 바뀌어도 종가의 계승은 변함이 없는 법』 이라고 말한다.
장생은 여생을 이곳에서보내며 우암 송시열,동춘송준길등 후학을 길러낸다.때문에 역사적으로『광산김씨』와『은진송씨』 와는 한집안 이상으로 우의가 두터웠다는 것.『송씨집안 딸이라면 궁합도 보지않고 며느리로 맞아들였다』며 길중씨는 웃는다.
김경수씨(성균관대총장),김시중씨 (고대조치원분교학장), 김종수씨(전광주지법부장판사·변호사 ), 김용휴씨 (전총무처장관), 김달수씨(3·7·8 대국회의윈),김완수씨 (전교통부차관·대한통운여행사사장)는 이마을에서 배출한인물들.
그러나 첨빈한 학자의 가풍때문인지 장생의 직계중에는 돈으로 입신한 재벌은 거의 없단다.
마을주민들의 주소득은예나지금이나다름없이 농사.『풍족하지는 않지만 아이들 학교보내고 먹고사는데 지장이 없으면 그만아니냐』며 이마을 광산김씨들은 활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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