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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종교의 현주소|개인 구원과 사회 구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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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동전의 양면성과도 같은 개인구원과 사회구원-.
결론부터 말한다면 어느 한쪽도 소홀히 지나쳐 버릴수 없는 기독교 구원의 핵심이다. 왜냐하면 한면이 없는 동전은 아예 화폐로서의 가치를 인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기독교 구원관을 영혼과 육체, 개인과 사회로 나누는 이분법적인 사고부터가 잘못된 발상임에 틀림없다.
그리나「우선순위」를 둘러싼 개인구원과 사회구원의 공방은 한국교회가 l960년대 이후 두편으로 갈리어 격렬하게 맞부닥친 교차점이었을 뿐만아니라 보수·진보를 판별하는 가늠자 역할을 해왔다.
특히 사회구원 쪽이 7O년대의 정치상황 급변화 고도 산업화에 따른 문제를 제기하면서 내놓은 「사회적 복음」은 한국교회 선교에 격랑을 일으키기도 했다.
『한국적 실정에서는 기독교 선교의 우선순위가 사회보다는 개인구원에 두어져야 마땅합니다. 물론 구미선진국과 같이 국민다수가 크리스천인 경우는「하나님의 선교」정신에 따라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신앙의 힘으로 바로 잡으려는 사회구원이 우선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는 보다 많은 국민대중을 교인이 되도록 하는 민족복음화의 개인전도가 앞서야죠.』
한경직목사 (서울영락교회원로)는 개인영혼의 구원과 성화가 교회전도의 우선 사명이라고 강조했다.
홍현설목사 (전감신대학장·사회윤리학)는 이 같은 개인중심의 교회복음 선교에 대해 『성서적 구원론을 이해한 사람이면 사회구원을 반대할 수는 없으며 완전한 구원이란 인간과 상황을 동시에 구원하는 것』 이라는 비판적 입장이다.
구태여 개인 구원과 사회 구원을 분류, 그 성서적 근거를 각기 찾는다면 길 잃은 「한마리」의 양을 찾는 목자와 「세상」을 사랑하라는 데서 비롯된다. 즉 한 마리의 양을 찾듯이 한사람 한사람의 영혼의 귀중함을 강조하는 입장과『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람하사 독생자를 주셨다』는 점이 선교신학의 구원 중심이 돼야한다는 점이다.
복음주의 적인 개인회개와 자유주의적인 사회변혁의 두 대립개념은 신학적으로 주관적 경견(교회선교)과 객관적 선교(하느님의 선교)로 갈라져 사회현실에 투영될 때에는 상당한 견해차를 보인다.
개인구원은 개인영혼의 갱생을 통해서만 사회개혁이 가능하다는 입장에서 많은 사람들이 개인적으로 회개하고 성령을 받게되면 사회전체가 자동적으로 달라진다는 것을 확신한다. 그리고 사회개혁은 특별한「소명」을 받은 「전문가」 들이 할 일이고 교회는 다만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곳만으로 충분하다는 태도다.
결국 개인영혼 구원만이 교회의 근본 사명이며 의료·교육·사회사업 등도 모두 영혼구원을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사회구원은 구약의 선지자들처럼 사회의 죄악을 규탄하고 사회가 나아갈 길을 제시해주는 예언자적 자세를 강조한다.
따라서 선교의 우선순위는 회개할 장소는 개개인의 신념이 자리한곳이 아니라 사회상황 전체이며 믿는 자는 스스로 하나의 사회적 행위 및 갱신의 원동력이 돼야지 결코 개인적 회개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사회구원 우선론자들은 사회란 개개인의 합에 불과하므로 개인이 착해지면 사회가 자동적으로 착해진다는 복음주의의「사회명목론」을 개인의 합보다 더 큰 힘을 갖는 사회구조 악에 대한 인식부족이라고 비판한다.
이에 반해 순수 복음적인 경건주의자들은 교회의 사회참여를 세속에 뛰어드는 일일뿐만 아니라 비 기독교적, 반 기독교적 행동이라고 규탄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용공이라는 비난까지도 한다.
1901년 장로교 공의회에서 선교사들은 『교회는 예배전용으로만 사용할 것이며 나라 일이나 정치적 일에 사용할 수 없고 목사의 사택에서도 정치를 논해서는 안 된다』고 결정했다.
이 같은 전통이 아직도 뿌리깊이 깔려있는 한국교회는 기독교인의 사회적 책임과 관심보다는 개인의 안전과 구원에 더 많은 관심을 갖는 율법적 경건을 많이 선교한다 (이장식· 한신대교수).
사회구조의 인간화와 역사현장 속의 하나님 행동을 특히 강조하는 사회구원의 신학적 배경은 빌링겐선교대회 (l952년) 에서 최초로 제기돼 50년대말 신학자「호켄다이큰 (화난), 후게오르크·피체돔」(독) 등에 의해 신학적 체계가 수립된「하나님의 선교」(Mission Die).
사회구원 우선측은 『복음주의의 개인구원은 사회개혁 제안대신에 오히려 저소득층 교인들에게 근면·인내·금주·복종으로 기존질서에 적응해야한다는「말세의 지혜」를 선교하면서 가진자와 못가진자가 함께 앉아 성령의 권능을 갈구한다』고 비판한다 (서광선·전이대교수) .
개인 구원론자들은 가난한자와 눌린자의 편을 강조하는 사회구원에 대해 『예수는 부자를 무턱대고 미워하거나 가난한자라고 마냥 좋아하지만은 않았다』는 것이다.
즉 젊은 부자가 예수를 만나고 돌아선 것은 자신의 구원에 방해되는 것을 제거해주려는 예수를 반대해서지 예수의 부자 증오심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회구원론자들은 마르크시즘적 입장에서 이 용어를 잘못 사용, 『제도나 기구만 뜯어고치면 인간이 해방되고 구원받을 수 있다는 엉뚱한 결론으로 비약돼서는 안 된다』고 스스로 경계하기도 한다. 다만 크리스천들은 자신이 처한 현재의 상황에서 양심에 따라 어떤 결단을 내려야할 것인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김관석·기독교방송사장).
로마 가톨릭과 미국 감리교의 대화모임(73년10월·스위스류티)은 오늘의 구원을▲기본적 인간생존권확보▲물질적·정치적 생활의 질향상▲생의 진실성과 통합의 실현이라고 요약했다.
어쨌든 개인영혼 구원만을 강조함으로써 기독교의 사회적 책임이 경시될 위험이 있는 반면 사회개혁만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신앙의 영성을 상실, 결국 기독교 근본사명을 망각할 위험이 있는 것이다.
물론 한국교회의 사회구원운동은 아직 남미·아프리카·아시아 일부의 급진적인 「해방운동」이나 인권운동과는 궤를 달리한다고 보는 견해가 많다 (홍현설목사).
이제 한국기독교는 『「캘빈」 주의자 (보수신앙)처럼 기도하고 「알미니안」주의자 (진보신앙)처럼 행동하라』는 말을 한번 되새겨 봐야할 것 같다.<이은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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