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방송작가협회가 방송평론상을 만드는 까닭

중앙일보

입력

한국방송작가협회(이사장 이금림)가 방송평론상을 제정한다. 서울예대 극작과 고선희 교수가 그 의의와 기대에 대한 글을 보내왔다.<편집자주>

일일드라마를 집필하게 됐다는 후배에게 선배 방송작가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매일 먹는 밥상이라고 함부로 차릴 순 없지.”

방송작가들 사이에서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30분씩 방송되는 일일극은 종종 주부가 매일 차려내야 하는 밥상에 비유된다. 그만큼 어렵고 지난한 작업이란 의미다. 일일극 뿐 아니라 방송의 거의 모든 내용물이 대중에겐 매일 먹는 밥과 같고 공기와도 같은 존재다. 대중은 날마다 거의 무의식적으로 다양한 방송 콘텐트와 접속하고 있다.

어머니가 정성껏 차려주는 가정식 백반이야말로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으며 건강에도 좋다는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평범하면서도 질 좋은 밥상을 삼시세끼 차려내야 하는 이들의 노고는 쉽게 잊히고 외면당한다. 반대로 불량식품이라도 한 상 가득히 차려내면 먹을 만하다고 모여든다. 극단적 사건과 갈등의 연속으로 대중의 시선을 일단 사로잡고 보자는 식의 ‘막장드라마’는 그런 상황에서 탄생한 기형아다.

물론 여전히 재미있으면서도 가치 있는 드라마로 웰빙 밥상을 제공해주는 작가나 피디도 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무한경쟁 체제 하에서 그들이 얼마나 더 오래 버텨줄지 알 수 없다.

방송은 너무도 친근해서 만만히 여겨지는 매체다. 그야말로 입 달린 사람이라면 누구나 어제 본 방송에 대해 한 마디씩 한다. ‘민폐’니 ‘발연기’니 등의 비판은 물론이고, 이미 캐스팅된 연기자를 적극 비판해 결국 교체에 이르게도 한다. 대중과의 소통은 무엇보다 소중하며, 다양한 의견을 적극 개진함이 공공재인 방송에 대한 수용자의 당연한 권리이기도 하니 오히려 발전적 현상일 수도 있다. 그러나 최근 한 지상파 방송사가 교양제작국과 같이 공영성을 담보해 줄 제작실무 부서를 없애는 파행적 조직개편을 감행한 것에 대한 반응은 잠잠하기만 한 반면, ‘욕하면서 본다’는 막장드라마’에 대한 호응은 여전히 뜨겁기만 하다. 최근 화제 속에 막을 내린 주말극의 악역 담당 배우에게는 ‘국민 악역’이라는 애칭까지 붙여졌다.

방송이란 밥상에 대한 지금 우리의 투정에는 문제가 없는 것일까.

이제 우리 방송에도 제대로 된 비평이 필요하다. 물론 신문의 방송평과 일부 문화평론가 집단의 방송비평은 꾸준히 존재해 왔다. 그러나 단편적 분석에 그치거나 그 역시 트렌드에 편향된 일회적 비평에 머무는 경향이 있다. 벤야민이 말했듯 ‘모든 대중을 적으로 삼는 동시에 대중의 대변자 노릇을 하는 비평가’가 더 많이 나와 줘야 한다. 방송의 질을 관리할 수 있는 가장 큰 권력의 기반은 대중에게 있다. 질 나쁜 음식은 단연 거부할 수 있어야 하며, 현혹되어 입에 넣었다가도 뱉어내야 한다. 제도적 차원에서의 감시와지원도 필요하지만, 비평 문화는 대중 사회에서 자발적으로 생성되고 발달해야 생명력이 있다.

한국방송작가협회가 올해부터 방송평론상을 공모해, 방송콘텐트에 대한 제대로 된 평론 문화를 만들어 보겠다고 한다. 방송 콘텐트의 1차 창작자인 작가집단이 자신들의 작품에 대한 분석적 비평을 적극 주도하고 나선다니 반갑고도 의미 있는 일이다. 이제 반찬투정 한 번 제대로 해 볼 때가 된 것이다. ‘한류’의 견인차가 된 것도 드라마였고 예능 콘텐트에 대한 국경 너머의 호응은 현재 진행형이니, 이에 대한 본격적 비평은 더욱 유의미한 작업이 될 것이다. 비평 문화의 발달은 곧 창작의 발전으로 이어질 것이다. 건강한 비판과 발전적 비평을 통해 우리가 매일 접하는 방송이 웰빙 유기농 건강 밥상으로 바뀌어 가길, 그러면서도 여전히 재미와 위안을 주는 방송 본연의 역할을 다해주길 기대해 본다.

고선희 서울예대 교수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