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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아프리카 독재국가에 조형물을 지어준 이유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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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로비 위, 철사줄로 매달아 둔 주기적으로 비닐봉지가 파르르 떨리며 부스스 소리를 낸다. 최승훈ㆍ박선민의 '모든 떨리는 것에 대한'이다. 1층과 3층 전시장에는 수백개의 방울을 매단 작품이 선풍기 바람에, 관객의 손에 움직이며 딸랑거린다. 양혜규의 ‘소리 나는 춤’‘소리 나는 돌림 타원’이다. '미디어시티 서울 2014'(예술감독 박찬경)는 소리의 전시다. 예술가가 직접 기획자로 나서 '귀신, 간첩, 할머니'라는 이색 주제를 내세워 일찍부터 관심을 모은 이 전시의 폐막이 열흘 앞으로 다가왔다. 그 사이 주전시장인 서울 서소문 서울시립미술관에는 10만여명이 다녀갔다. 영상물들을 위한 별도 전시공간인 국립영상자료원 입장객은 뺀 수치다. 서울ㆍ광주ㆍ대구ㆍ부산ㆍ창원 등지에서 일제히 비엔날레라는 이름의 격년제 국제미술전이 개막한 올 가을, 그 맏형격인 광주 비엔날레는 66일간 18만명이, 대구 사진비엔날레는 38일간 10만 5000명의 관객이 다녀갔다며 속속 폐막을 알리고 있다. 미디어시티 서울은 23일 막을 내린다.

'소리의 전시'는 2층으로 이어진다. 전시장 복도에 전등갓처럼 생긴 스피커 아래 서면 할머니들의 읊조림이 들린다. 청취 아카이브 ‘할머니 라운지-목소리 저편’으로 문화방송 라디오PD 최상일이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백두대간 민속기행’‘소리꾼 기행’(1989∼2005)의 방송본을 김지연과 재구성한 공간이다. ‘할머니 전시’는 또 있다. 런던서 활동하는 미카일 카리키스는 2년 전 제주 해녀를 주제로 한 영상을 만들었다. 진주잡이 작업 중 갑자기 몰아치는 폭풍 소리, 생동감 넘치는 노동요도 그대로 담겼다. 할머니들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귀신ㆍ간첩ㆍ할머니’= 지난 20여년간 전세계는 비엔날레 붐이었다. 예술의 ‘신천지’였던 아시아에도 그 열풍이 불어닥쳤다. 아시아 곳곳서 우후죽순처럼 비엔날레가 생성과 소멸을 반복했다. 새로운 매체라 할 ‘미디어 아트’의 소개로 특화해 2000년 창설된 서울시의 비엔날레인 ‘미디어시티 서울’은 이번에 아예 ‘아시아성’을 주제로 삼았다. 제국주의에 이은 냉전으로 아시아의 근대사가 형성된 가운데, 그 미시사에 해당할 무속과 이데올로기 전쟁, 여성에 주목하겠다는 취지다. 아시아의 질곡의 근대사, 그 중에서도 유난히 억압되고 은폐됐던 여성사가 다소 신파조로 흘러가는 가운데 돋보인 작업은 최원준의 다큐와 설치 ‘만수대 마스터 클래스’다. 체제 선전과 외화 벌이를 위해 아프리카 독재국가들에 기념비적 조형물을 지은 북한 만수대 창작사를 세네갈 다카르의 ‘아프리카 르네상스 기념비’, 나미비아의 ‘영웅릉’ 등 현지 취재와 각종 아카이브를 통해 밀도있게 보여줬다.

북한의 국립 예술가 집단인 ‘만수대 창작사’는 독재 정권을 지지하고, 저들에게 비자금을 조성해 주는 전위부대이기도 했다. 냉전이 한창이던 7,80년대 남북한이 아프리카에서 벌인 치열한 외교전을 보여준다. 고영환 전 짐바브웨 북한 서기관은 인터뷰 영상에서 “아프리카 세이셸이든 미국이든 UN에선 똑같이 한 표라는 게 김일성의 생각”이었다며 아프리카를 향한 무지막지한 투자의 배경을 설명한다. 당시 ‘영애’로 아프리카 순방길에 나선 한복 입은 박근혜 대통령의 기록 영상도 있다. 지난 여름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은 한국관(커미셔너 조민석)에도 출품됐던 작품이다. 심각한 전시장 속에서 웃음을 찾을 수 있었던 작품은 인도네시아 작가 마할디카 유다의 영상 ‘선라이즈 자이브’. 매일 아침 공장 노동자들의 체조 또한 근대화ㆍ식민경험과 함께 아시아에 들어온 규율의 한 예다. 그러나 아무리 규율지으려 해도 오합지졸처럼 어딘가 멋대로인 저들의 움직임은 솔직하고 유머러스하다.

◇아시아 비엔날레= ‘신도안’‘만신’ 등 무속의 세계를 예술로 들여다 봐 온 박찬경씨는 큐레이터가 아닌 예술가 스스로가 비엔날레의 총감독으로 일한 이색적 사례로 꼽히게 됐다. 박찬욱 감독의 동생이기도 한 그는 “아시아의 근대성 그 이면, 기존의 프레임에 잡히지 않는 것, 지역적 영역인 아시아가 아니라 식민경험과 냉전이라는 공통 경험을 가진 아시아를 들여다봤다”고 설명하는 그는 기존에 본인이 천착해 온 주제를 밀도있는 전시로 발전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올해 예산만 15억원, 공공기관과 일한 경험이 많지 않아서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예술가와 공조직 사이에서 서로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전시 주제 중 ‘간첩’이라는 말이 들어가 지하철공사 광고를 못했던 일도 있었다. ‘스파이’였다면 됐을텐데”라며 웃었다. 무료. 02-2124-8986.

권근영 기자 young@joongang.co.kr
영상=미디어시티 서울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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