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특집」 그때의 상황재현 미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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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KBS제1TV의 6·25특집극 『13세 소년』은 작품의 깊이와는 달리 내용은 허술한 느낌이다. 우선 원작과 달리 드라머의 상황설정을 북괴의 남침 때를 기점으로 한 배경이 어울리지 않는다.
낙오된 국군병사들이 이른바 당과 인민에 대한 무한한 충성심으로 무장한 「작은 어린이」를 만나는데 드라머대로라면 그곳이 38이남이니 대한민국 땅에 그런 소년이 있있던 것으로 착각하게 만든다.
원작의 문학성은 전투적인 이데올로기로 세뇌된 아이를 천진스런 어린이로 돌려놓는 과정에 있을 것인데 그 부분의 묘사가 흐리고 북괴군의 강간장면에 충격을 받아 생각을 바꾸는 것으로 고친 것은 원작의 의미를 반감한 셈이 됐다.
또 서정터치의 작품전개는 긴박한 상황이 주조가 되어야할 전쟁리얼리즘이 여려(목마를 태우고 노래하는 군인 등) 드라머가 박진감을 잃고만 것 같다.
○…MBC-TV의 6·25특집극 『포로들』은 6·25당시 북괴치하 해주감옥에 갇혔던 양민 2백17명이 열차로 실려가다 터널속에서 학살당한 사건을 다룬 것이다.
집단학살 명령자가 거제도에 수용된 북괴 군의관출신인 윤 중위로 알려져 헌병대의 전범수사반의 신문이 집요한데 송환을 거부한 반공포로이면서도 전범재판에 회부될 것이 두려워 자결하고 만다.
그러나 실제의 명령자는 형무소 부소장으로 밝혀지고 「그 모든 영혼에게 경건히 명복을 빈다」는 군목의 기도로 2시간짜리 특집극은 막을 내린다.
하나님은 진실을 알며 죄를 참회할 때 그 굴레에서 벗어나게 된다는 게 이 드라머의 테마일 듯 싶은데 주제설정의 상황이 너무도 맹랑하다.
①그때나 지금이나 헌병대에는 이른바 전범수사반은 없다. 그때 우리헌병대의 임무는 포로의 호송과 경비가 고작이었다.
②특히 거제도 포로수용소의 관할권은 유엔군쪽에 있어 우리에게는 조사권조차 있을 수 없었다.
③포로의 신문은 이름이나 계급·국적·수용소규칙을 어긴 경우 말고는 어떤 정보탐지를 위해서도 고문이나 강제를 쓸 수 없는 게 「제네바협약」의 규정이다.
④전범이란 포로의 살상, 점령지의 민간인 학살, 조약으로 금한 무기의 사용이나 침략전쟁을 수행한 자들에 대한 2차대전 때의 전승국의 제재행위였다.
그렇다면 윤 중위의 행위는 이상의 어떤 경우에도 해당되지 않아 전범이 될 수 없다. 게다가 이 드라머의 억지스러움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예컨대 전범수용소가 따로 어디에 있었다고 「전범」으로 수용하겠다고 협박하는 건지, 6·25중에 무슨 「전범재판」이 있었기에 떳떳하게 재판을 받아 이 땅에서 자유롭게 살라고 생색을 내는 건지, 저항할 수 없어 손을 든 게 어째서 투항이 아닌지, 반공포로인데도 신분의 보장이 없던 것으로 꾸민 근거는 무엇인지―그저 당혹스런 느낌뿐이다.
TV는 영상메커니즘이 지닌 현실재현능력의 결과 드라머를 진실한 것으로 오인시키는 엄청난 힘이 있다.
30년이 채 못되는 그때의 상황을 이토록 뒤틀리게 그렸고 간단한 국제법의 상식까지 저버린 이 드라머에 어떤 평가가 옳은 것일까.
그래서 『목사님 난 전범이 아니야요―. 그런 걸 따져서 날 어떡할려고 그럽네까. 자유를 택하여 고향과 부모를 다 버렸읍네다―. 내가 어째서 적입네까』라는 윤 중위의 절규가 더욱 진실하게 메아리로 남는다.
신규호<방송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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