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깊이보기 : 고유가 시대…다시 원전을 생각한다

원전 역사는 안전과의 전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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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인간의 삶은 수많은 위험 요소에 노출돼 끊임없이 위협받고 있다. 인간의 생존에 '안전'이 필수적인 이유다. 자전거를 탈 때와 고속철도나 비행기를 이용할 때의 위험성은 다르다. 편리성이 증대된 만큼 위험성도 커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라 필연적으로 수반된 이와 같은 위험성은 또 다른 과학 기술력으로 대항하고 방어할 수 있다.

원자력도 이런 분야의 하나다. 원자력은 안전성이 확보되지 않고서는 결코 함부로 사용할 수 없는 기술이다. 발전소 설계단계부터 발전소 수명이 다해 폐기 처분을 하고 난 이후까지 안전성 확보 노력은 계속된다.

원자력발전소가 최초로 등장한 1950년대부터 제4세대 원자로를 설계하고 있는 지금까지 원자력 안전에 대한 연구는 지속적으로 발전돼 왔다. 50년대 원자력 발전의 안전은 주로 부품이나 장비의 기계적 고장을 막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기술이라 할 수 있는 다중방호의 개념이 최초로 도입된 원자력 발전소는 항공기보다도 더 엄격한 품질보증과 안전을 확보했다.

이에 따라 79년 미국의 스리마일 원자력발전소(TMI)의 사고가 있기 전까지 원자력발전소의 사고는 거의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졌다. 원전 사고는 사람이 벼락에 맞아 죽을 확률과 비교되기도 했다.

그러나 TMI 사고 이후 원전의 안전에 대한 개념은 또 한 번 진보했다. 부품의 고장 확률 외에도 운전원의 사소한 실수까지도 고려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은 것이다.

이후 원자력발전소에 근무하는 운전원에 대한 엄격한 신원조회와 약물 검사 제도가 도입됐다. 이처럼 TMI 사고의 교훈을 반영한 원자로가 제2세대 원자로며, 한국표준형 원자로도 여기에 해당한다. 역설적으로 TMI 사고는 오히려 원자력발전소가 얼마나 안전한지를 보여줬다. 원전의 탁월한 안전성을 보여준 매우 값비싼 실증실험이라 할 수 있다. 무려 2조원에 달하는 원자력발전소가 파손됐지만 원전 밖의 환경이나 주민들에게는 방사능으로 인한 피해가 없었기 때문이다.

제2세대 원자로가 도입된 이후에는 세계적으로 실제 건설된 원자력발전소가 거의 없다. 이 때문에 제3세대는 대부분 설계인증만 받은 상태다. 제3세대 원자로에는 TMI 사고의 교훈인 인적 요소의 반영 이외에도 지진이나 태풍 같은 천연 재해에 대한 대비가 더욱 강화됐다.

2000년 1월 한국을 비롯한 원자력 선진국 10개국은 미국 워싱턴에 모여 제4세대 원자로를 국제적으로 공동 개발하자는 논의를 시작했다. 제4세대 원자로 개발의 초점도 안전성 향상에 맞춰져 있다. 이제까지의 기계적 안전과 인적 사고에 대한 방비는 물론 천연 재해나 테러에 대비해 원전 바깥으로 방사능 유출이 전혀 없는 원자로를 개발하기로 한 것이다.

이런 노력이 성과를 거두면 원자력의 안전성에 대한 막연한 의구심은 말끔하게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박창규<한국원자력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