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 분업과 불신풍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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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양은솥에 물 끓듯 한다―.』
약사휴업 수습에 사실상 전 행정력이 동원된 26일 보사부 일각에서는 정부의 대응을 과민하다고 느끼는 자아비판의 소리가 있었다. 밤중에 각료간담회가 긴급 소집되고 전 지방행정조직과 경찰, 그밖의 기관까지 동원된 수습은 국민보건에서 차지하는 약국의 비중을 감안하더라도 아무래도 지나친 느낌이 없지 않았다.
유장한 중국인들이라면 가만 버려두어 제풀에 지쳐서 문을 열게 했을 거란 비교도 있었다.
「동네약국」들이 이웃을 외면하고 1주일이상 실제로 문을 닫으리라고 믿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1주일을 기다릴 여유가 우리에겐 없었던 셈이다. 사회안정의 심도를 반증하는 것도 같아 아쉽다. 정부의 시책이 마음에 안 든다고 시책발표 다음날 전국 일제휴업을 결의한 약사들이나 휴업을 전체가 나서서 억지로 뜯어말린 정부나 「양은솥의 단기」에선 피장파장이란 느낌이다.
『뿌리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흔들리고 샘이 깊은 물은 가뭄에 아니 그친다』는 용비어천가의 세파대로 「나라의 심도」가 너무 옅은 것 아닌지. 「속」이 없는 사회, 「중간」이 없는 사고, 끝에서 끝으로 단숨에 직진하고 마는 이 조급성·경직성의 치유 없이 정치·경제·문학 모든 분야에서 민족의 참된 성장은 불가능한 것 아닐까.
약국이 문을 열긴 했다. 그러나 약사들이 마음으로 설득된 것은 아니다. 대화와 설득은 이제부터랄 수 있다.
문제는「불신」에 있다고 본다. 의사는 약사를 못 믿고 약사는 의사를 못 믿고 정부의 행정은 양쪽이 못 믿는다. 그러니 제대로 대화를 통한 설득이나 합의가 될 리 없다. 약국을 보험에 참여시키기 위해 의·약의 부분적인 분업을 실시한다는 데는 3자 모두 이의가 없다.
다만 약사들은 의사의 처방전발행을 꼭 해야하도록 「강제」해달라는 것이고, 의사들은 「강제」는 위법일 뿐 아니라 환자치료에서 현실적으로 무리이니 「권장」에 그쳐야한다는 주장이다. 보사부는 중간에서 현행법상 「강제」는 불가능하다고 보고 권장하는 임의분업으로 하되 의사들이 최대한 처방전을 떼도록 「지도」하겠다는 약속이다.
그러나 약사들은 믿지를 못한다. 의사들이 적극협력을 약속했지만 약사들은 지난해 3개 군의 지역보험 예를 내세워 『못 믿겠다』한다. 보사부의 보증도 제도적으로 보장이 없는데 어떻게 믿느냐며 「무마용 공수표」에 불과하다는 단정이다.
현대 법치국가에서 명문화된 법률적 보장의 요구는 원칙적으로 당연하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 정부의 공적인 약속은 형식을 떠나 법 이상의 효력일수도 있다. 「순 진짜 정말 참기름」도 믿지 못하게 된 세태가 사실은 문제의 시작이며 끝이라고 보인다. 그런 점에서 해결은 뜻밖에 쉬울 수도 있다. 새 출발은 이 불신의 뿌리를 자르는 것과 함께 가능할 것이다. <문병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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