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적 감각 날카로운 『밤비』, 설득력도 지녀|『고향』은 무난하나 눈에 띄는 대목이 안보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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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시조가 아닌 자유시에서 절구를 가려 뽑고 보면 시조의 율격―외형과 내형―을 지니고 있음을 본다.
곧 우리 나라 말과 글을 군더더기 없이 정제하다 보면 시조의 가락에 도달하게 됨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나라의 시의 시작은 시조이고 시의 끝도 또한 시조라는 믿음은 필자만의 것이 아닌 성 싶다.
「밤비」는 시적 감각이 매우 날이 서있다. 너무 기교에 치우친 나머지 <그 정갈한 파리한><고요란 고요의>등 같은 말의 유희가 있지만 하려는 말을 설득력있게 해내는 솜씨는 사줄만하다.
「새5」는 연작으로 계속 써 보내오는 작품중의 하나인데 작품이 툭 튀는 것이어서 빼지 못하고 싣는다. 시조도 이쯤 되면 자유시를 고집할 까닭이 없겠고, 지은이에게는 졸업장을 줄만하다.
「영지에서」는 두고 노래해도 마르지 않는 전설의 못을 다시 노래하고있는데 <이승의 문턱을 딛고 파문으로 서성인다>는 살아있는데 <눈 멀은 나의 가슴에 표구되어 걸린다>는 억지스럽다. 고쳐 쓰기 바란다.
「6·25」는 지은이가 일부러 솜씨를 낮추어서 쓴 것인지는 몰라도 시가 표어처럼 메말라있다. 두고 쓰는 말이 아닌 살아움직이는 말로 6·25를 쓸 수도 있지 않을까.
「고향」은 크게 무리없는 작품이나 그만큼 눈에 드는 대목도 없다. <못 가는 마음에 실어 띄워 보낸 종이배>가 바로 그것인데 험잡을 데 없으면서도 왠지 새것이 아니라는 느낌이 드니 말이다.
「산안개」는 시조의 기본형식에 깍듯이 맞춰 쓴 작품이다. 기본 자형은 어디까지나 통계에 의한 표본을 뽑은 것이지 절대의 것이 아니나 초심자들에게는 우선 기본에 충실하는 것이 좋은 태도이다.
「소품삼제」는 소제목들에서 먼저 켸켸묵은 냄새가 난다. 좀더 현대적 감각의 시 제목과 시상을 뽑아낼 수 없을까. 눈을 크게 뜨고 둘러봐야겠다.
「인생」은 자연의 흐름에다 삶의 역정을 비유하고 있는데 들어맞지는 않아도 하나의 방법일 수는 있다. 좀더 언어를 다듬는데 힘쓰도록.

<이양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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