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논쟁과 대안: 줄기세포와 생명윤리

조심스러운 대안 모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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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배아 연구자와 반대자 사이에서 근원적인 합의점이나 대안을 찾는 일은 연목구어(緣木求魚)나 다름없다. 특히 천주교.기독교 등 종교계와는 사실상 접점이 없다. 이미 20년째 이 논쟁을 계속하고 있지만 여전히 평행선이다. '어디서부터 생명이 시작되는가'에 대한 답을 각기 다르게 내리고 있어서다.

종교계는 '배아 연구는 궁극적으로 생명의 파괴이며, 복제 인간의 출현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한다. 그리고 대안으로 성체 줄기세포를 내세운다. 반면 배아 연구자는 각자가 믿는 종교와 상관없이 이에 동조할 수 없는 입장이다. 피아노 없는 피아니스트 신세가 될 게 뻔하기 때문이다.

한양대 의대 김계성(해부세포생물학) 교수는 "지동설.진화론.시험관 아기 등 과학의 발전 과정에서 연구자는 종교인들과 수없이 부딪쳐 왔다"며 "특히 1978년 세계 첫 시험관 아기가 태어났을 때는 이번 배아 연구보다 훨씬 격렬한 반대가 있었다"고 말했다.

따라서 줄기세포에 대한 윤리 논쟁은 서서히 자연스러운 사회현상으로 자리 잡으면서 윤리 논란을 피해갔던 전례를 밟을 것으로 기대했다. 황 교수는 배아와 성체 줄기세포를 함께 연구하자는 절충안을 제시했다. 두 연구를 동시에 진행시켜 난치병 치료제 개발을 앞당기자는 것이다.

생명윤리학계에선 배아 연구의 가치를 인정하는 기류가 엿보인다. 배아 연구의 '가.불가'보다 '어느 선'까지 허용할 것인지에 관심을 두는 학자가 늘어나는 것이다. 이화여대 의대 권복규(의료윤리학) 교수는 "생명윤리 학자가 배아 연구를 반대하는 것처럼 비치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며 "생명윤리 학자 내부에서도 배아 연구를 바라보는 시각이 다양하다"고 소개했다.

지난해 10월 호주 시드니에서 열린 세계생명윤리학회에서도 배아 연구에 대한 '발목 잡기'는 거의 자취를 감췄다. '배아 파괴=살인 행위'로 등식화하는 학자도 극히 드물었다. 배아 연구를 인정하되 생명의 존엄성을 최대한 보장하는 방향으로 연구 역량을 결집하자는 것이 주류였다.

배아 연구자들은 배아 연구를 바라보는 시민단체의 자세가 유연해졌다고 평가한다. 폐기될 예정인 냉동 잔여 배아에 대해선 윤리문제를 제기하지 않기로 한 것이 단적인 예라는 것이다.

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