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습니다.
고숙종 피고인은 17일 하오 눈물을 글썽이며 3백4일만에 집으로 돌아온 소감을 말했다.
『죄가 있다면 못사는 게 죄일 뿐 나는 절대 사람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고씨는 다시 한번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다.
고씨 일행을 태운 녹색 포니 택시가 서울 정릉동290의41 자택에 도착한 것은 하오1시25분쯤. 집에는 딸 둘은 출타 중이었고 외아들 성원군(16·K고등기술학교2년)만이 기다리던 보도진과 함께 고씨 일행을 맞았다.
차에서 내린 설씨는 카메라가 터지자 남편 윤씨의 부축을 받고 잠시 포즈를 취하기도 했다.
다음은 고씨와의 일문일답.
1구치소에서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
▲허리가 아파 매일 구치소 내 보건소에서 치료를 받아왔다. 소화가 안 돼 죽만을 먹어왔다. 처음엔 독방을 사용했으나 3개월 전부터 합방으로 옮겨졌고 여기서도 허리가 아파 거의 누워지냈다.
사건당시 발견된 재물은 어찌된 것인가.
▲패물은 형사들이 사건이 난 다음 가져와서 나에게 보관시킨 것이다.
1앞으로 어떻게 지낼 생각인가.
▲당분간 병원에서 허리치료를 받고 보험 외판원은 못할 것 같다.
풀려난 소감은.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다(이때 눈물을 글썽였다). 나는 절대 사람을 죽이지 앉았다. 죄가 있다면 못사는 것뿐이다.
그동안 동창·친지들의 구명활동을 알고있었는가.
▲고교동창 2백70명이 모금 운동을 해 사식을 넣어줬고 1심 이후 구명운동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가족 등은 거의 매일 구치소로 면회 왔었다.
경찰수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죄 없는 사람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놓고 무슨 민주경찰이라 할 수 있느냐.(이때 고씨의 시선은 허공을 향해 있었으나 표정은 울먹이는 듯 했다)
고씨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딸의 것으로 보이는 푸른 운동복으로 갈아입었고 남편 윤씨는 경찰수사가고문에 의한 조작이었다는 것을 몇 번씩 강조했다.
오늘 낮 고씨 집에는 동네사람들은 찾아온 이가 없었다.
하오 3시30분쯤 막내딸 은경양(12·D여중1년)이 학교에서 돌아와 어머니 고씨를 붙잡고 울음을 터뜨리자 고씨는『나는 이제 살았다』며 울지 말라고 은경 양의 눈물을 닦아 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