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마찰 빚는 보수·진보신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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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진보주의자들을 만날 때마다 보수주의자란 신앙의 교만에 꽉 차 있어 대화가 통하지 않으니 같이 이야기할 필요조차도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듯한 인상을 받아 왔습니다. 그래서 평소 진보 신학자나 신앙 인들을 만나면 괜히 위축이 됩니다. 특히 자유주의자들은 보수주의자들의 지적 공신력을 불신, 기독교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이니 토론의 대상도 안 된다는 태도지요.』
한국 기독교의 보수신학 노선을 대표하는 신학대학의 하나인 장로교 총회 신학대의 박아논 교수는 마치 정권을 둘러싼 여-야 정당의 대립 같은「갈등의 심연」을 헤매고 있는 진보·보수 교회간의 이질감을 이 같이 실토했다.
김의환 교수(장로교총회 신학 대)는『한국의 보수교회는 오늘에 와서 많이 위축, 수적으로 보다는 특히 국내외적인 영향 면에서 몸을 가누기조차 어려울 만큼 외로워졌고 자유신학의 도전 앞에 진통하는 보수 신학의 면모를 뼈아프게 목격하고 있다』고 자못 비감 어린 독백(?)용 토로했다(김의환 저『기독교회사』) 한국 기독교의 보수와 진보신학 및 신앙은 세계 수준에서보다도 훨씬 더 예민하게 구별되는 가운데 두 흐름은 최근 20년 동안 때때로 난폭하게 부딪치기도 했고 교회의 신앙양태, 선교 스타일 등에서 대립 상을 보이며 같은 교단 안에서까지도 미묘한 마찰을 일으켜 왔다.
「진보」와「보수」의 문제는 교회 밖에서까지 지반의 날카로운 대립을 보이고 있는 사회·정치 참여, 도시산업 선교 등과 같은 첨예한 문제들을 야기 시키는 근원이기도하다.
현재 한국개신교의 진보교회와 보수교회의 교세는 2백25만 대 5백35만 명으로「보수」가 신자 수에서 단연 우세한 편이다.
교단 적으로는 한국 기독교 교회 협의회(KNCC)의 6개 가맹 교단(예장 통합·기독교 감리교·기독교 장로교·성공회·구세군·기독교 복음교회)과 천주교가 진보주의를 대표하고 있으며 나머지 개신교 60여 개 교단은 대체로 보수주의 노선을 견지하고 있다.
한국 기독교 진보신학의 본산은 기장의 한신 대학-. 이 밖에 장로교 신학대학, 감리교 신학대학 등도 신보주의 신학노선을 따르고 있다.
보수신학은 장로교 합동 측과 고신 측의 장로교 총회 신학대학, 고려신학 대(부산)등 이 구심점이다.
교세 면에서는 3분의 1밖에 안 되는 진보 파 교회들의「소리」와 행동이 교회 밖의 일반 사회에서 전 기독교를 대표하는 듯한 위세를 떨치고 특히 세계 기독교 교회 협의회(WCC) 등과 같은 국제 기독교무대에서 한국 기독교의 대부(?)로 군림하고 있는 게 오늘의 한국 교회 현실이다. 「소수의 다수 지배」라는 민주주의적 상식논리가 뒤바뀐 이 같은 한국 교회 현실은 한마디로 개인 구원보다는 사회구원 우 선을 외치는 세계적인 자유신학 사조의 영향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오늘의 인간현실과 역사적 상황 속에서 역 사하는 하느님의 구원을 강조하는「하느님 선교」를 핵심내용으로 한 자유신학 노선의 진보적인 교회들이 체제비판 등을 통해 목청을 높인 데는 급격한 산업화·유신체제 같은 한국적 상황이 호재로 작용했다는 신학자들의 분석도 있다.
보수와 진보는 성서 해석학상의 원천적인 차이로부터 비롯돼 교회의 사명의식, 구원관, 선교관 등에 서로 상반된 입장을 내세운다. 즉 진보주의는 교회의 예언자적 사명과 고발적인 교회 의식화를 강조하는 반면 보수주의는 이신득의의 구원관(Sola fide), 성서의 절대권위(Sola Scripture)에 복종하는 것만이 기독교의 전통적인 본질을 수호하는 길이라고 주장한다.
성서 해석상으로는 보수가 축자영감설, 성서의 역사과학적 무오 등을 역설하는 반면 진보는 성서의 무오 성과「예수회 동정녀 탄생 등을 부인한다. 또『여자는 조용 하라. 여자는 가르치지 말라』는 성서의 교훈은 2천년전의 일개지방의 풍습이지 만고불변의 진리가 아니라고 일축해 버린다.
흔히 복음주의·근본주의·경건주의라는 신학 용어와 혼용되기도 하는 보수주의 신학은 사도「바울」-성「어거스틴 -「루터」-「캘빈」등으로 그 선학사조가 이어지면서 현대에서는「그레샴·메첸」「반·틸」「에드워드·영」「스톤하우스」등의「메첸」주의 신학자들로 대표된다.
정치·해방·흑인신학 등을 파생시키기도 한 진보주의는 일명 자유신학·신비 학 등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독일 튜빙겐 학파와 미국 유니온 신학 대, 프린스턴 신학 대 등의「카를·바르트」(1886∼1968),「불트만」(1884∼),「라인홀트·니버」(1892∼197l),「본회퍼」(1906∼1945),「폴트만」(1926∼)등 이 대표적인 신학자들이다.
특히「히틀러」를 반대한「본회퍼」의 고백교회 운동과「라인홀트·니버」의 정치신학, 「볼트만」의 소망 의존 학 등은 진보주의자들이 많이 인용하는 신학사조다.
1920년대까지 보수신학 일변도였던 한국 기독교의 진보신학은 1930년대 중반 김재준·송창근 등의 신학자들이 신 신학을 도입한 이래▲50년대=「바르트」「틸리히」「슐라이에르마하」「브루너」「헤겔」「불트만」▲60년대=「본히퍼」「호켄다이크」「로빈슨」▲70년대=정치·해방 신학 등 이 주로 풍미했고 이들 신학사조와 맥락을 같이 한「민중신학」이라는 진보신학의 한국적 토착화가 진행되고 있다.
현재 한국 기독교는 교의용어에도 보수가「성경」「하나님」을 고집하는데 반해 진보 측은「성서」「하느님」을 즐겨 쓰고, 금연·금주·제사 등에도「절대 죄악시」와「관용적」인 태도가 엇갈리고 있다. <이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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