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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난 유엔총장 "문명의 동맹 만들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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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기독교와 이슬람 사이에 놓인 벽은 높고 두텁다. 영국과 중동에서 발생한 연쇄 테러는 두 문명의 충돌에 뿌리를 두고 있다. 충돌의 역사는 길다. 그만큼 적대감도 강하다. 두 문명의 충돌이 계속되는 한 세계 평화는 요원해 보인다. 문명 간 화해는 불가능한 것일까.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이 그 일을 해보겠다고 나섰다. 그는 14일 '문명의 동맹'을 추진하겠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영국 런던 테러 직후다. 그는 "최근의 사태들은 이슬람과 서방의 상호 이해가 부족하고, 그 틈이 벌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극단주의자들은 그걸 이용하고 있고, 상황을 더 악화시키고 있다"고 했다. "'문명의 동맹'은 서방과 이슬람 사이에 다리를 놓아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편견과 오해, 극단주의 등을 극복하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난 총장의 구상을 추진할 파트너는 기독교 문명권의 호세 루이스 로드리게스 사파테로 스페인 총리와 이슬람 문명권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총리다.

사파테로의 경우 기독교 국가의 총리이면서도 이슬람과의 관계가 괜찮은 편이다. 그는 지난해 3월 11일 마드리드에서 열차 테러 사건이 발생하기 전부터 스페인의 이라크 철군을 주장했다. 테러가 발생하자 이라크전 파병이 화(禍)를 불렀다고 강조했다. 당선되면 즉각 이라크에서 철군하겠다고 했다. 그것으로 그는 단숨에 선거 상황을 역전시켰다. 그리고 총리에 취임한 뒤 철군을 단행했다.

터키는 이슬람의 나라지만 종교가 정치를 좌지우지하지 않는다. 종교와 정치가 분리된 '세속국가(Secular Nation)'다. 그래서 원리주의.극단주의가 판을 치지 않는다. 이슬람 국가 중에서는 가장 서구화돼 있다. 유럽연합(EU)에 가입하기 위해 각종 제도도 유럽식 기준에 맞게 정비했다. 그래서 스페인과 터키 사이에서는 '문명 동맹의 접점'이 찾아질 수 있으리란 기대가 나온다.

아난과 사파테로, 에르도안은 '문명의 동맹' 을 진전시키기 위한 방안으로 '신탁 펀드'를 만들기로 했다. 구체적인 규모나 조성 방식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유엔 측은 "이제 막 시작한 단계이기에 '동맹'의 취지를 전파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구체적인 실행 계획은 2006년 말께 나올 것"이라고 밝혔다. '동맹'의 성공 여부는 불투명하다. 미국 등 서방의 주요 국가와 중동의 이슬람 나라가 과연 얼마나 호응할지가 관건이다.

이상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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