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흔든 시 한 줄] 엄홍길 산악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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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그러나 지난 꿈속에서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한 자는 살아남는다.’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 브레히트의 시 ‘살아남은 자의 슬픔’

먼저 간 동료 있어 이룬 성공
그들 이름을 주문처럼 외운다

2007년 5월 31일 오후 6시50분, 내 인생의 요원한 꿈인 히말라야 8000m 16좌의 마지막 봉인 로체샤르(해발 8400m) 등정에 성공했다. 2001년 봄에 와서 실패하고 2003년 봄 시즌엔 정상 150여m를 남기고 순식간에 엄청난 사고가 일어난 곳. 당시 밑이 3000여m인 수직 절벽에서 맨 앞서 오르던 황선덕 대원이 판상 눈사태를 맞고 떨어졌다. 바로 밑에 있던 박주훈 대원마저 휩쓸려 둘이 함께 절벽 아래 마치 블랙홀과 같은 곳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나는 히말라야 8000m 16좌를 오르기 위해 22년 동안 38번 도전했다. 나는 살아남았지만 10명의 동료들을 히말라야에서 잃었다. 그동안 생사고락을 같이 한 동료들의 노고가 있었기에, 함께 산을 오르다 먼저 간 동료들의 값지고 고귀한 희생이 있었기에, 많은 사람의 성원과 기원이 있었기에, 그리고 히말라야가 나를 받아주셨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술딤도루지 셰르파, 박병태, 지현옥, 나티 셰르파, 카미도루지 셰르파, 한도규, 현명근, 다와마탕 셰르파, 박주훈, 황선덕. 나는 지금도 그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그 이름들을 주문처럼 외우고 다닌다. 

엄홍길 산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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