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Report] 옆길로 샜네요 … 주택담보대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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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서울 송파구에 사는 40대 회사원 A씨는 최근 집을 팔았다. 집을 내놓은 지 4년 만이다. 그동안 딱 한 명이 집을 보러올 정도로 팔기 어려웠는데 세입자가 전세가 너무 오르자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매입했다고 했다. 그는 “2006년 분양 받은 26평 아파트를 팔아 2억원의 차액을 남겼다”며 “최경환 (부총리) 덕을 봤다”고 말했다. 집을 판 그는 전세에 계속 산다. 앞으로 집값이 오를 것같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경기도 일산에 사는 50대 초반 B씨는 지난 9월 같은 아파트 단지에서 이사했다. 그는 “기존 집을 팔고 평수 넓은 집을 구입했다”며 “거래가 드물어 간신히 사고 팔았지만 주택담보대출을 추가로 빌릴 수 있어서 큰 문제가 없었다”고 했다.

 정부의 주택 거래 활성화 대책으로 꽉 막혔던 주택 거래가 올 상반기에 비해선 숨통을 트이고 있다. 최근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내놓은 ‘부동산시장 동향분석’에 따르면 올해 3분기 전국 주택매매 거래량은 23만9009건으로 지난해 3분기보다 67.2% 증가했다. 실질 주택매매 가격도 전년 동기 대비 0.8% 올라 전분기(-0.2%)의 하락 분위기를 반전시켰고, 전기 대비로도 0.3% 상승해 회복세를 보였다.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경제사령탑에 지명된 지난 6월 13일 기자들과 처음 만나 ‘한겨울에 여름옷’이라며 주택대출 규제 완화 방침을 밝힌 뒤 일어난 주택시장의 새로운 모습이다. 최경환 경제팀은 그동안 융단폭격식으로 주택 거래 활성화 대책을 쏟아냈다. 7월 29일 주택담보인정비율(LTV)·총부채상환비율(DTI)을 대폭 완화한 데 이어 9월 1일에는 재건축 가능 연한을 30년으로 단축하는 대책도 내놓고, 최근엔 다세대·연립 확대 대책도 내놓았다.

 이런 정책에 힘입어 주택 거래가 조금이나마 활기를 띠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정부가 주택 거래 활성화의 불쏘시개로 삼은 주택담보대출에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가계대출 부실화가 심화될 것이라는 우려에 따라 오랫동안 묶어 놓았던 규제를 풀었는데 그 후 변화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이런 의문을 풀기 위해 금융감독원이 작성한 7~9월 금융권 주택담보대출 상세 내역을 국회로부터 입수해 분석해봤다. 이 시기는 주택담보대출 완화 방침에 이어 규제 완화가 시행되면서 주택담보대출 규제 완화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은 기간이다.

 가장 큰 특징은 주택담보대출의 ‘1금융권 시프트(이동)’였다. 최경환 경제팀은 금융권별로 차등이 있었던 LTV 비율을 8월 1일부터 일괄적으로 70%로 통일했다. 이 결과 은행·보험 같은 1금융권은 50~60%에서 70%로 높아지고, 한도가 최고 80%에 달했던 상호금융·저축은행·신협은 70%로 낮아졌다. 이는 정부가 예상한 대로 2금융권에서 1금융권으로의 대거 이동 현상을 초래했다. 6월 말 대비 9월 말까지의 월별 주택담보대출 잔액이 은행은 10조7000억원 늘어났다. 같은 기간 보험은 4000억원이 증가했다. 이에 비해 2금융권은 상호금융과 저축은행은 각각 3000억원, 1000억원의 감소세를 나타냈다. 이런 결과는 1금융권의 주택담보대출 한도가 10% 포인트 높아지면서 대출 수요자들이 대거 은행으로 몰려들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결정적 요인은 금리차다. 현재 은행은 3% 초중반에서 주택담보대출을 빌려주는 반면, 2금융권은 4~5%에 돈을 빌려준다. 초저금리 시대가 되면서 1%포인트 차이는 민감한 차이를 낳는다. 2억원을 빌릴 경우 금리 1% 차이에 따른 이자 부담은 연간 200만원까지 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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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누구도 진지하게 생각하지 못했던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택담보대출로 빌린 돈으로 집을 사지 않고 주택 구입외 용도에 돈을 빌리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점이다. 7~9월 중 주택 구입을 위해 주택담보대출을 얻은 신규 자금은 18조2000억원으로 주택 구입외 목적으로 빌린 20조9000억원보다 적었다. 전체 대출액 가운데 주택 구입에는 46.5%만 흘러갔다는 얘기다. 주택담보대출 가운데 주택 구입외 목적으로 빌린 돈을 어디에 쓰는가 봤더니, 이미 있던 기차입금 상환이 8조4000억원으로 가장 많았는데 생계자금으로 쓰겠다는 대출금액도 5조2000억원에 달했다. 전세와 월세를 포함한 주택임차 용도로 쓰겠다는 자금도 2조4000억원이었다. 이 세 항목을 모두 합하면 16조원에 달한다. 김동원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생활자금 같은 용도로 쓰면 은행 건전성에 상당한 마이너스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주택담보대출이 주택 구매 용도로 쓰이지 않는 현상은 2분기(4~6월)와 비교해도 명확하다. 주택 구입을 위한 신규대출이 2분기에 비해 2조2000억원 증가하는 데 그친 반면, 주택 구입외 목적으로 빌린 신규대출은 6조4000억원에 달한다. 주택 구입보다는 다른 용도로 주택담보대출을 활용한 자금이 3배에 이르는 셈이다. 특히 문제가 되는 생계자금으로 쓰기 위해 빌리는 신규대출이 최근 2년 사이 최대치를 기록하고 있다는 점이다. 생계자금으로 쓰기 위해 빌리는 분기별 주택담보대출이 최근 2년 사이에는 4조원을 넘긴 적이 없었다. 그러나 지난 3분기에는 5조원을 훌쩍 뛰어넘은 5조2000억원을 기록했다.

 이같이 정부가 겨냥한 대로 먹혀들지 않는 것은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집을 구입하면 그 돈이 집에 묶여 있지만 월세나 생활자금으로 소비해버리면 상환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주택담보대출은 주택외 구입외 목적으로 활용하는 데 대한 제한이 없다. 전월세 대출 용도로 빌린 주택담보대출이 크게 늘어난 것도 정책 효과가 반감되고 있다는 신호다. 전월세 대출 용도로 빌린 신규 주택담보대출은 지난해까지 분기별로 2조원을 넘긴 적이 없었는데 올 1분기 들어 2조원을 돌파하더니 3분기에는 2조4000억원으로 뛰어올랐다. 이상빈 한양대 파이낸스 경영학과 교수는 “주택 가격 상승을 기대하기 어렵고, 세금만 무거우니 집 사려는 수요가 여전히 적다”며 “주택 거래 활성화를 위해 풀어준 주택담보대출 규제 완화가 기대 효과를 내지 않고 다른 부작용을 낳는다면 철저한 점검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동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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