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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이 학력과시를 위한 범재 교육장이 돼선 안 된다|교육인플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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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83학년도 대학입시전형방법이 또 바뀔 모양이다. 이처럼 대학입시의 난맥상은 물론 대학의 시설 불비, 졸업정원제 등의 문제로 대학교육에 대한 비판이 거세다. 대학교육이 이처럼 표류하고 있는 것은 대학교육의 목적이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중세와 근세의 대학은 학자·지식인을 배출하는 것이 대학교육의 목적이었다. 대학의 기원인 중세서양의 대학은 문예학부를 수료한 사람만이 신학부·법학부·의학부에 진학하는 체제로 돼 있었다. 이 당시에는 부유층 자제들을 교육시키고 연구케 하여 법률가·신부·승려·의사·교수를 양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었다.
미국에서도 초기 식민지대학의 양상은 같았다. 그것이 현대에 들어오면서 고등교육의 대중화가 부르짖어 지면서 대학교육의 목적이 교양인을 양성하는 일반교양교육으로 변질했다. 미국에서는 교양대학의 전성기를 이루었으며, 직업교육은 전문대학원에서 하기에 이르렀다.
일제시대의 우리나라 대학은 유럽식인 전문인을 양성하는 직업교육이 위주였다. 해방 후에는 미국의 영향에 힘입어 대중교육의 시대로 들어갔으며 교양교육의 중요성이 강조되기에 이르렀다. 그 결과 고등학교교육은 대학입학 율에 의한 예비학교로 전락하였으며 직업교육을 표방하는 공고나 상고까지도 대학진학교육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 결과 대학진학 열은 높아졌고 공고나 상고졸업생에게는 동일 계 진학을 위한 특전까지 주어지게 되었다.
완성교육이어야 할 고등학교 직업교육이 실패하자 이들을 대학으로 흡수하기 위해 직업교육으로서의 전문대학이 생겼으나 졸업 후 취업이 되지 않는 바람에 대학편입학관으로 전락하고 말았으며 대학편입제도의 폐지와 함께 전문대학의 존립은 위기에 부닥치게 되었다.
오늘날 대학교육도 많은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4년 동안 공부하고 난 뒤에도 편지 한장 옳게 못 쓴다는 비난이 행해지는가 하면 법과대학이나 의과대학을 나와서도 곧 직업인이 될 수 없는 반가 통의 교육을 하고 있다는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리하여 법과대학이나 의과대학을 나온 뒤에도 사법연수원이나 대학병원에서 몇 년간 실무수습을 해야만 변호사·의사가 되게끔 교육연한이 연장되고 있다.
경영대학졸업생이나 행정대학졸업생들도 곧 취업하지 않고 경영대학원이나 행정대학원·무역대학원 등의 특수대학원을 졸업해야만 비로소 취업하는 경향도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교육연한의 연장현상은 미국식 교육제도를 따랐기 때문이며 전인교육으로서의 교양교육을 지나치게 강조한 때문이다.
대학을 교양교육기관으로 인정하여 직업전문교육을 배제하고 학생들의 자율적인 공부를 권장한다고 하여 실험대학제도를 도입하여 앞으로는 졸업학점을 1백40점에서 1백20학점으로 내리며 직업전문교육을 전담하게 하기 위하여 대학원 대학을 세우기로 했다고도 한다.
대학인구의 팽창, 대학교육연한의 연장은 범세계적인 경향이기는 하지만 우리나라가 과연 미국이나 일본처럼 대학교육을 교양교육으로 고쳐야 할 것인지는 매우 의심스럽다. 86학년도에 대학입학정원을 43만 명으로 늘려 대학졸업생을 대거 사회에 진출케 하여 고등실업자를 양산하고 학사운전사·학사미장이·학사선반공·학사농군·학사청소부를 만들어야 할 것인지 재고해야 하겠다. 고학력사회의 병폐를 시정하는 방향으로 나가는 것이 보다 바람직할 것 같다.
오히려 인문계 고등학교를 독일처럼 교양교육기관으로 하고 대학은 전문직업 교육으로 전환하는 것이 우리의 실정에 맞는 것이 아닌가 검토해야 할 것이다. 인문계 고등학교는 현재의 대학교양과목정도의 교육을 해야 할 것이며 객관식 암기위주의 교육을 탈피하여 교양인으로서의 완성교육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를 위해 고등학교 교육연한을 1, 2년 연장하는 것은 고려될 수 있을 것이다. 실업고등학교와 실업계전문대학을 통-폐합 하고 완성교육을 하여 졸업 후 기능공이라든가 하급공무원·일반은행원 등으로 취업하게 하여야 할 것이다. 고교졸업생의 취업을 보장하고 4년간 일한 뒤의 월급이 대학졸업생의 초봉과 같게 해 대학진학인구의 팽창을 막아야 할 것이요, 교육인플레로 오는 국력낭비를 막아야 할 것이다.
대학입학 시험의 과열을 막기 위한 방편으로 입학정원을 배증 하는 것이라든가 면학분위기를 조성한다는 명목으로 졸업정원제를 두어 학생을 불안에 떨게 하며「점수벌레」로 만드는 것은 옳은 대학교육의 방향이라고는 할 수 없다. 대학교육의 대중화는 현재로서는 시기상조이다 고등학교보다 못한 교원과 시설을 가진 전문대학이나 대학까지 있어 대학교육의 질이 저하되고 있는 것은 국가 백년대계를 위해 슬픈 일이다.
대학교육의 질적 향상을 기하고 졸업생의 취업을 확보해 줄 수 있는 전문직업교육이 행해지도록 교육정책이 전환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제 대학원교육조차 대중화하는 경향이 있다. 대학원교육은 영재교육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특수대학원이 양산되어 야간수업으로 학위를 주는 경향이 늘어나고 있다.
대학교육이나 대학원교육이 학력과시를 위한 범재 교육이 돼서는 안 된다. 학위취득의 대중화는 방송통신대학이나 성인교육기관을 통해서 할 것이요, 대학이 이를 위해서 희생될 수는 없는 것이다. 의과대학의 증설이 의학교육의 질적 저하를 막기 위한 목적으로 억제된 것을 계기로 대학정원정책과 대학시설, 대학교육목표 등에 대한 광범한 재검토가 행해져야 할 것이다.
물론 직업교육의 특성에 따라 변호사 양성을 위한 법률대학원, 전문의사양성을 위한 의학대학원제도 등은 인정되어야 할 것이다. 취업되지 않기 때문에 부득이 대학에 진학하고 대학졸업 후에도 취직이 안돼 대학원에 입학하는 악순환은 이제 종지부를 찍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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