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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해부 유럽 무슬림 그들은] 능력·실력 뛰어나도 주류 편입 못해 '반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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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유럽에서 태어나 유럽에서 자란 무슬림(이슬람교 신자) 테러리스트들이 유럽의 평화를 흔들고 있다. 유럽 시민권자로 비자 없이 미국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어 향후 커다란 위협 요인이 될 것이다."

미국의 외교안보 분야 싱크탱크인 닉슨 센터의 로버트 레이큰 연구원은 외교전문지 포린 어페어스 7 ~ 8월호에 기고한 '유럽의 성난 무슬림들(Europe's Angry Muslims)'이라는 기사에서 이같이 경고했다. 유럽의 무슬림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유럽 내부에서 생겨난 테러 조직들이 새로운 안보 위협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것이다. 12일 영국 경찰이 발표한 7.7 런던 테러 용의자 4명은 영국 시민권을 지닌 파키스탄 이민 2~3세대였다.

지난해 11월 이슬람 비판 영화를 만든 네덜란드 영화감독 테오 반 고흐를 살해한 청년은 네덜란드 태생의 모로코계 이민 2세였다. 지난해 스페인 마드리드 열차 테러의 주범들은 모로코계로 시민권은 없었지만 스페인에서 자랐다. 닉슨 센터 조사에 따르면 1993~2004년 서유럽과 북미에서 테러 활동을 벌인 급진파 373명 중 25%가 서유럽 시민권자였다. '유럽산(産) 테러리스트'들은 비록 극소수지만 이라크 참전국에 대해 무차별적인 적의를 발산하고 있다. 한국도 잠재적 테러 위협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이다.

◆ 유럽의 무슬림 확산=이탈리아의 전설적 여성 언론인 오리아나 팔라치는 지난해 발간된 저서 '이성의 힘(The Force of Reason)'에서 "유럽은 이슬람의 한 지방(Province)이자 식민지가 돼 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중동 전문 칼럼니스트 대니얼 파입스는 이슬람 세(勢) 확장의 원인으로 두 가지를 꼽았다. 첫째는 유럽에서의 기독교 쇠퇴다. 둘째는 유럽 원주민들의 출산율 저하다. 현재 유럽의 무슬림 인구는 약 2000만 명으로 추정된다. 유럽 인구의 4 ~ 5%다. 프랑스가 600만 명으로 제일 많다. 전문가들은 2020~2025년이면 지금의 2배인 4000만 명을 넘을 것으로 본다. 미국의 무슬림은 300만 명가량이다.

무슬림들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을 계기로 유럽에 본격적으로 들어왔다. 유럽 사회는 전후 경제 재건을 위해 저임금 이주 노동자를 대거 받아들였다. 미국과 달리 유럽의 무슬림 이주민들은 끼리끼리 모여 살았다. 출신에 따라 나라별로 집단 거주 형태를 띠는 것은 이 때문이다. 알제리인들은 프랑스에, 모로코인들은 스페인에, 터키인들은 독일에, 파키스탄인들은 영국에 모여 사는 식이다.

◆ 무슬림 이민 2세대의 사회 부적응=지난해 마드리드 열차 테러와 네덜란드 영화감독 살해사건은 유럽 사회에 큰 충격을 불러일으켰다. 평범하게 살던 이민 2세 청년이 테러단체에 포섭돼 끔찍한 범행을 저질렀기 때문이었다. 영화감독 살인 용의자 모하메드 부예리(27)는 70년대 네덜란드로 이민 온 모로코인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네덜란드어를 거의 하지 못했지만 그는 달랐다. 지역 최고의 명문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서 회계와 정보기술을 전공했다. 그러나 졸업장을 따지 못하고, 중퇴한 뒤 주로 거리에서 빈둥거리며 소일했다. 폭행범으로 7개월 복역 후 이슬람 광신도가 된 그는 '호프스타트'라는 테러단체에 가입했다.

부예리처럼 이민자 2세들이 과격 이슬람 운동에 쏠리는 가장 큰 이유는 주류 사회에 대한 소외감과 울분 때문이다. 부모 세대는 보이지 않는 인종차별의 벽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다. 하지만 자식 세대 중 일부는 억눌린 분노를 분출하는 쪽을 택하고 있다. 테러단체가 출구를 제공했다. 영국 일간 더 타임스는 10일 "알카에다 조직원들이 캠퍼스에서 무슬림 대학생을 포섭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신문이 입수한 영국 정부 공식 문서에 따르면 공학이나 IT 학위 소지자는 최우선 포섭 대상이다. 이들은 실력에 비해 장래가 보장되지 않는 데 불만을 품고 있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최신호(7월 18일자)에서 영국의 경우 16 ~ 24세 무슬림 남성의 실업률이 22%에 달한다고 전했다. 지난해 영국 이슬람인권위원회가 영국의 무슬림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60%가 "영국 사회가 무슬림들을 존중하고 있지 않다"고 답했다.

◆ 유럽인의 배신감과 반(反) 이슬람=잇따른 무슬림 주도 테러에 대한 유럽 사회의 배신감은 상당하다. 다양한 민족과 문화를 껴안을 수 있다는 톨레랑스(관용)의 정신을 보여줬지만, 무슬림들이 이를 테러로 갚았다는 생각이다. 특히 영국은 젊은이들을 부추기는 급진 이슬람 신자들의 포교 활동을 너그럽게 수용해 왔다. 그러나 이제는 '테러리스트의 온상''런던이 아니라 런더니스탄(런던과 '이슬람 국가'를 뜻하는 스탄을 합친 말)'이라는 식의 비아냥에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이러한 충격과 공포, 혐오는 무슬림에 대한 린치.반달리즘(파괴 행위)으로 이어지고 있다. 다문화주의를 표방하면서도 이방인들을 주류 사회에 끼워주지 않았던 유럽은 지금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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