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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 분야 학술지, 국제적인 리더쉽 가져야 해"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미국 국립보건원(National Institutes of Health, NIH) 산하 국립의학도서관에서 운영求� 국제적 의학논문 공유데이터베이스 PubMed Central(PMC)은 의생명과학 분야 논문의 원문을 무료로 제공한다. 2000년 첫 번째 서비스를 시작한 이후 지난해 10월 현재 280만편에 달하는 의생명과학 관련 논문이 등록돼 의료계와 일반 대중에게 모두 공개되고 있다. 돈을 내지 않고도 누구가 볼 수 있는 '공개접근(open access OA)' 논문 데이터베이스는 유럽 Europe PMC, 캐나다 PMC Canada 등에 연이어 구축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역시 지난 2012년 10월, '보건의료기술연구개발사업 관리규정' 개정을 통해 국립보건연구원을 연구개발결과 중 논문의 공개 및 공유 전담기관으로 지정했다. 공적 연구비가 투입된 과제의 경우 관련 논문 성과를 공공에 개방하자는 취지다. 이를 위해 「국립의과학지식센터」에서 PMC Korea를 구축하고, 각국의 개별 시스템을 잇는 PMC International에 참여하면서 의학 정보의 개방과 공유를 위한 첫발을 내딛고 있다.

국내에 논문 공개접근의 당위성을 제시하고, 그 흐름을 이끌어 오고 있는 인물이 한림대학교 의학대학 기생충학 허선(56) 교수다. 국내 의료지의 미국 PMC 등록을 위해 대한의학학술지편집인협의회 소속이던 지난 2006년, 독학으로 일주일 간 PMC XML 포멧을 공부했고 100여개의 테그를 하나하나 붙여가며 적합도 검사를 완성했다. 그는 한 해 50회 이상의 강의를 통해 국내 의료계에 정보 공개접근의 의미와 실질적인 적용방법을 알려오고 있다.

허선 교수

허선 교수는 "국내 의료 논문의 공개접근은 정보 격차 해소로 국격 재고의 효과를 거둘 뿐 아니라, 국내 의학 분야 학술지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에게 의학 분야의 정보 공유에 대한 의미를 물었다.

-세계적으로 논문 공개접근 운동이 주요 트렌드로 자리잡은 이유는 무엇인가.
"먼저 논문의 출판 과정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과학자들이 논문을 쓰면 이를 출판사, 학회, 기관이 학술지(저널)로 발행해 대중에게 알린다. 전 세계적으로 엘스비어와 스프링거, 와일리 등 거대 출판사가 논문의 60%를, 나머지 40%를 학회와 기관이 발행한다. 셀(CELL), 란셋(LACNET), 네이쳐(NATURE)등 주요 저널은 이른바 거대 출판사에 의해 발행되는데, 요약문(초록) 외에 전문을 보려면 돈을 내야 한다. 가난한 곳과 부유한 곳의 지식격차가 생길 수 밖에 없다. 우리나라도 대학과 기관별로 관련 예산에 차이가 있어 돈이 없으면 논문을 쉽게 보지 못한다. 가난한 나라일수록 의료 인력과 연구 인프라가 빈약하지만, 그 만큼 가장 필요하기도 하다. 논문에 대한 공공의 무료 접근 정책(Public Access Policy)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미국과 영국, 그리고 우리나라도 관련 정책을 도입해 추진하고 있다.

-기생충학을 전공하면서 이런 분야에 관심을 갖게된 이유가 있나.
원래 정보분야에 관심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안과학회에 이어서 1993년에 두 번째로 기생충학 홈페이지를 만든 경험도 있다. 전공은 아니지만, 하고자 하면 관련 서적을 10번이고 20번이고 계속 읽어 보고 직접 해보며 경험을 쌓는다. 나만 똑똑한 것 같지만, 실은 우리나라 의료계에 있는 사람치고 이 정도 안돼는 사람이 없다(웃음).
국내 의학계 학술지도 내용과 전문성 면에서 외국에 절대 밀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런데도 다른 과학자들이 인용하는 정도(피인용횟수)는 0.1에서 0.2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기생충학회 편집위원을 맡았을 때 의학 논문을 외부에 알릴 수 있는 플랫폼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 국내 의료계 학술지를 미국 PMC에 등재하면 될 것 같았는데, 문제는 예산이었다. 학술지 내용이 영문이여야하고, 파일 형식이 PDF가 아니라 XML 형태로 만들어야 PMC 등재가 가능했다. 그래서 혼자 일주일 동안 XML 공부해가면서 100여개 정도 예제를 직접 해봤다. 변환 파일이 맞느냐 틀리냐를 확인하는 게 적합도검사인데, 그걸 통과했을 때 희열은 말로 표현하지 못할 정도다. 직접 대학의학학술지편집인협의회 직원들 교육해서 2007년 대한의학회지(Journal of Korea Medical Science)를 처음으로 미국 PMC에 등재했고, 지금도 꾸준히 국내 의료 학술지가 등재되고 있다.

-학술지 공개 효과는 어떤가.
우리나라에서 피인용지수(IMPACT FACTOR,IF)가 가장 높은 대한천식알레르기학회 ‘AAIR’도 공개접근 방식이다. 미국 PMC에 등재된 거의 대부분의 학술지의 IF가 높아진다. 그 만큼 국내 학술지의 영향력이나 연구의 질이 높아지고, 정보 공유에 의한 국격 상승의 효과도 거둘 수 있다. 논문이 학술적인 권위가 되는 시기다. 거대 출판사가 발행하는 학술지의 영향력이 강해질수록, 국내 학술지의 평판이나 형편은 점점 나빠질 수 밖에 없다. 의학 학술지 가운데 공개 접근 방식으로 시작한 'PLOS MEDICINE'이 창간 7년만에 의학분야 학술지의 TOP 5에 들었다는 사실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학술지 가운데 미국 톰슨사이언티픽사(社)가 논문의 인용성과 전문성을 종합 심사한 뒤 상위 10~15%를 선별해 SCI를 정한다. 현재로는 공개접근 방식의 학술지 가운데 12%정도가 SCI다. 공개접근 방식은 학술지가 상업적인 목적보다 학문발전이나 공익성을 띄어야 한다는 데서부터 출발하는 것이다. 연구의 질은 대중이 평가하게 하고, 그들로 인해 우수학술지로 도약하는 선순환적인 발전이 가능하다. 우리나라 의료 학술지가 국제적인 리더쉽을 갖고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상업목적의 학술지는 이미 네덜란드, 미국, 영국, 독일이 꽉 쥐고 있다. 국내 의료계가 인터넷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논문 공개접근에 적극 나서면 학술지의 리더쉽을 갖출 수 있다. 국내 학술지 편집인들의 역할이 좀 더 전문화된다면 더욱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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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렬 기자 life@joongang.co.kr <저작권자 ⓒ 중앙일보헬스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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