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마네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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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사될 수 없는 아름다움이라는 것이 있다. 그런 아름다움에 대해 말해야 하는 일만큼 사람을 곤혹스럽게 하는 일도 없다. 그렇지만 바로 그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매혹의 느낌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은 또 얼마나 불행한가."

스쿠버다이빙 중 바다 속에서 '어린 여신'의 이미지를 잠깐 바라본 '마네킹'의 작중 인물 쏠배감펭이 그 여신의 실체를 찾아가며 밝힌 말이다.

1988년 '저기 소리 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를 '문학과사회'에 발표하며 등단, 동인문학상.이상문학상 등 굵직한 소설문학상을 수상한 최윤(50)씨가 6년 만에 내놓은 신작 장편소설 '마네킹'은 현대에도 여전히 소통될 수 있는 아름다움에 대한 신화다.

어린 여신의 정체는 '주가'가 최고조로 치솟고 있는 광고 모델 지니. 가난한 집안의 막내딸로 태어나자마자 용모와 자태, 그리고 분위기로 아역 광고 모델로 활동하며 하루도 쉴 틈 없었던 지니는 자궁 속으로 다시 빠져들듯 바다 속으로 한 점 꽃잎처럼 가라앉는 광고 촬영을 끝으로 가출한다.

여자로서 아직 채 피지 않은 나이로 가출한 지니는 화면 속의 이미지가 아니라 바닷가 이 마을 저 마을로 돌아다니며 세상 사람 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위안과 구원이 된다.

"울지마 내가 너를 이렇게 사랑하는데"라며 사랑과 세상에 버림받은 사람들을 온 몸과 목숨 바쳐 위로하고 광장에서의 절실한 사랑의 몸짓인 춤으로 뭇사람들에게 위로를 주다 바닷가 동굴에서 죽어 그녀를 그리는 뭇사람들이 쌓아올린 돌무덤의 여신으로 서 있다.

스쿠버다이빙 중 최소한의 몸짓으로만 가장 절절하게 사랑과 세상의 경이를 교감으로 주고받았던 쏠배감펭의 아내는 결혼 첫날 밤 취한 채 바다에 투신한다.

신화적 애정 시대에서 현실적 결혼 시대로 건너길 거부한 자살일까. 그 절대의 아름다움을 현실에서 구가하는 자세로 쏠배감펭으로 하여금 지니를 찾아나서게 하는 중간중간 작가는 지니의 가족들을 등장시켜 스스로 자신을 밝히게 하면서 현대인의 정체도 드러내고 있다.

어린 지니를 목 졸라 말도 못하게 만들고 다리.입술.표정 등 지니의 모든 몸을 최고의 광고상품으로 팔려는 오빠. 물신 사회를 냉소하면서도 그 속성을 가장 잘 이용하고 있는 그는 결국 황폐한 무인도를 사 자폐와 자멸을 꿈꾼다.

그리고 동생이 가출하자 그 대역으로 나서는 언니, 막내딸의 불행을 보면서도 적극적으로 어쩌지 못하고 단지 산속에서의 밤샘 기도로 죄책감을 달래곤 하는 엄마 등에서 현대사회의 축소판을 볼 수 있다.

"바람과 바다를 동시에 가지기 위해서 그녀는 여기 누워 있다. 늘 움직이고 그 움직임은 세상의 어느 움직임보다도 변화무쌍하다. 그 움직임이 있는 한 어찌 희망하지 않을 수 있으랴."

'마네킹'은 낮에 빛을 저장해 두었다가 밤이면 빛을 내는 돌무덤의 지니로 끝난다. 끊임없이 움직이며 세상 깊이 스며들어 여전히 새로운 삶의 희망을 주는 바람이며 파도로 지니는 남는다.

"아름다움에 대한 갈증이 이 작품을 쓰게 했다. 황량한 시대를 가로질렀기 때문이다. (중략) 그래도 여전히 세상의 한 쪽이 비옥한 것은, 검은 구멍을 벌리고 빈곤하게 말라가는 불행한 영혼들보다, 아름다운 사람들과의 만남이 더 빈번했기 때문이다. 내가 만났던 아름다운 그들로부터 '그녀'가 태어났다."

작가가 후기에서 밝힌 대로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기에 세상의 한쪽은 비옥하다. 말로 표현하기 난처한 아름다운 만남을 만남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들이 있기에 세상에는 아직 이와 같은 신화.우화가 씌어지고 읽혀지는 것이다.

이경철 문화전문기자

<사진설명>
"한번은 꼭 쓰지 않으면 안되는 작품"이었다며 '소설가는 말할 수 없는 아름다움의 실체를 그래도 전해야 하는 존재가 아니겠는가'를 이번 작품을 통해 묻고 있는 최윤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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