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교양] '야만의 역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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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이가 묻는다. "전쟁을 하면 사람이 많이 다치지 않아요?" 아버지의 대답이 걸작이다. "얘야, 걱정할 것 없다. 죽는 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아니란다." 이라크 전쟁이 시작하기 전에 어느 외국 신문의 카툰에서 본 것 같다.

정말 썰렁한 조크 같지만, 당시 미국 사람들의 무의식 상태를 잘 반영한 것이리라. 타자는 정말 지옥이다. 피부색이 다르면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스웨덴 작가 스벤 린드크비스트는 정말 매력이 넘친다. 사하라 사막을 여행하면서 우리들을 안내하는 곳은 공간이 아니라 19세기란 시간이다. 유럽 제국주의가 저지른 홀로코스트의 만행이 생생하게 재현된다.

마치 프랜시스 코폴라 감독의 '지옥의 묵시록'을 다시 보는 듯하다. 이와 더불어 린드크비스트의 유년 시절로, 조셉 콘래드의 영국으로, 히틀러의 독일 속으로 함께 지적 순례를 떠나는 기쁨도 누리게 된다. 그가 보여주려는 큰 그림은 이렇다.

19세기 유럽 제국주의는 바깥으로 '문명'을 확산시킨다는 명목으로 대학살을 자행한다. 이때 팽창의 이데올로기로 이용된 것은 인종주의. 그러나 이 인종주의 이념은 결국 유럽 내부의 집단적 광기로 변모되고,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로 표출된다.

여기서 린드크비스트는 히틀러의 유대인 대학살이 스탈린의 광기를 모방했다고 주장하는 놀테와 같은 보수적 역사학자들의 해석을 비판한다. 그는 홀로코스트는 16세기 이래 유럽이 비서구 사회와 대면한 이래 생긴, 병력이 긴 집단적 광기라고 주장한다.

그가 주로 활용하는 가이드북은 콘래드의 소설 '암흑의 핵심'이다. 콘래드는 콩고 강을 따라 상아 밀렵꾼 커츠를 찾아가는 말로의 시선을 통해 제국주의적 자아의 흔들림, 파열 현상을 내밀하게 드러낸다. 유럽 제국주의를 상징하는 반영웅 커츠는 외친다.

"모든 야수들을 절멸하라." 이 말을 제국주의 계관 시인 키플링의 시 구절과 겹쳐 읽어보자. (야수를 죽여야 하는) "백인들의 짐을 져라. 당신이 양육하는 가장 훌륭한 자식을 보내라."

이 책은 '암흑-문명'의 탄생에 관한 19세기 지성사에 대한 기행문이다. 그의 콘래드 해석은 에드워드 사이드의 해석보다 훨씬 명쾌하다. '타임머신' '닥터 모로의 섬' '투명인간' '세계들의 전쟁'을 쓴 웰스를 콘래드와 더불어 식민주의 비판 담론으로 읽어낸 것도 눈길을 끈다.

하지만 이 책의 매력은 인종주의 담론의 탄생과 재생산을 쉽게 풀어내며 홀로코스트의 기원을 명쾌하게 해설한 것이다.

다윈의 진화론이 탄생한 이후 생물학은 적자생존의 논리를 보편화했다. 스펜서는 이를 사회적 진화론으로 둔갑시켜 제국주의 팽창이념의 뼈대를 만들었다.

이 논리에 따라 제국주의의 타자인 아프리카 흑인, 호주와 아메리카의 원주민들은 '야수'내지 '열등인종'이 되었다. 퀴비에.녹스.골턴 등은 과학의 이름으로 이런 인종주의를 합리화했다. 이제 제국주의는 우수한 인종의 생물학적 팽창 과정으로 둔갑했다.

독일의 라첼은 인종주의 논리와 공간이론을 결합했고, 독일 민족에게 자유로운 생활공간 '레벤스라움'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히틀러는 감옥에서 라첼을 읽었고, 후일 유대인들이 밀집 해 있던 폴란드와 러시아를 침공했다.

그리고 절멸시켰다. 커츠는 독일에서 히틀러로 환생한 것이다. 콩고에서 베트남으로 은신처를 옮겼다던 커츠 (대령)는 지금 어디에 숨어 있는 것일까?

이성형<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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