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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록의 원류를 찾아서] 최고 록밴드 U2의 보노, 성탄절엔 거리의 악사 변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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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호 15면

아일랜드 더블린시내의 그래프턴가에서 연주하는 버스커(길거리 악사)와 그를 지켜보는 사람들. 세계 최고의 록밴드 U2의 보노는 매년 크리스마스이브가 되면 이 거리에 서서 불우이웃 돕기 거리공연을 벌인다. [조현진]

세계적인 음악도시에는 상징적 인물이 있기 마련이다. 미국 멤피스엔 엘비스 프레슬리가 있고, 영국 맨체스터에는 토니 윌슨이 있다. 그리고 이 상징적 인물들은 이미 세상을 떠났기에 대중음악의 전설이 됐고, 도시에 매력적인 스토리를 제공하면서 해당 도시는 관광명소로 부각된다.

⑥ 아일랜드 더블린

그런데 1921년 영국에서 독립한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은 예외다. 이 도시의 최대 음악자원은 세상을 떠났거나 해산한 밴드가 아니고 현존 최고 인기의 록밴드로 건재한 U2이기 때문이다. 아일랜드 대중음악 관광상품을 기획하는 ‘더블린, 디프런틀리(Dublin, Differently)’의 숀 맥브라이디 대표는 “아일랜드의 음악 역사는 깊고 다양하지만 관광객에게 가장 강렬하게 호소하는 아이콘은 역시 U2임을 부인할 수 없다”고 말한다.

아일랜드 로큰롤이 시작된 쇼밴드
로큰롤이 태어나기 이전에도 아일랜드에서 음악은 늘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아일랜드 전통 음악을 배경으로 한 열정적인 장면은 이미 수많은 영화에서 묘사됐다.

아일랜드에 기독교를 전파한 성인을 기리기 위해 매년 3월 17일에 열리는 세인트 패트릭 데이(Saint Patrick’s Day) 축제를 통해서도 아일랜드의 전통 음악은 이미 오랜 기간 동안 일반에게 전파돼 왔다.

대중음악에서 아일랜드가 오늘날 차지하는 탄탄한 위상은 1960~70년대 크게 인기를 끈 ‘아이리시 쇼밴드(Irish Showband)’에서 출발한다. 쇼밴드는 당시 미국과 영국의 인기 히트곡을 클럽 등에서 연주하는 밴드들이었다. 아일랜드 쇼밴드들이 연주력을 인정받기 시작하면서 이들은 외국 클럽에 초대받거나 유럽 내 미군 부대에서 연주하는 기회가 늘어났고, 결국 아일랜드 로큰롤의 진원지 역할을 하게 된다. 로큰롤에 큰 영향을 미친 싱어송라이터 밴 모리슨이나 기타리스트 로리 갤러거 등이 모두 쇼밴드 출신이다.

더블린시는 아일랜드가 로큰롤에 기여한 역사를 기억하고 관광 자원화하기 위한 노력을 꾸준히 하고 있는데 시내 중심부에 있는 클럽과 바들이 밀집한 시내 중심부의 템플바(Temple Bar) 지역 주변이 대표적이다. 99년 개장한 ‘아이리시 음악 명예의 전당(Irish Music Hall of Fame)’은 아일랜드 로큰롤을 세계에 전파한 아티스트들을 소개하고 기념하는 박물관 역할을 한다. 지금은 임시로 문을 닫고 새로운 장소를 물색 중인데 박물관으로 사용된 건물 외벽은 아직도 ‘명예의 벽(Wall of Fame)’으로 불리며 밴 모리슨, U2, 시네이드 오코너, 더 크랜베리스, 85년 라이브 에이드(중앙SUNDAY 9월 14일자 런던 속 로큰롤 성지들) 행사를 기획한 붐타운 래츠의 밥 겔도프 등 아일랜드를 대표하는 로큰롤 아티스트들의 사진이 붙어 있어 지나가는 관광객을 즐겁게 한다.

명예의 벽(Wall of Fame) 외관. 아일랜드 로큰롤을 대표하는 뮤지션들의 사진이 붙어 있다.

95년 47세의 나이에 숨진 로리 갤러거는 퀸의 브라이언 메이, 건즈 앤 로지즈의 슬래시, 더 스미스의 조니 마 등 수많은 후배 아티스트가 자신들의 영감이었다고 밝히는 아일랜드 출신의 기타리스트였다. 그는 아일랜드에서 팬더 스트라토캐스터(Stratocaster) 기타를 처음 연주한 인물로도 기록되고 있다. 2009년에는 더블린시장과 U2의 기타리스트 더 에지 등이 참석한 가운데 그가 사용하던 기타를 본떠 만든 조각상이 제막됐고, 이 자리는 ‘로리 갤러거 코너’로 명명됐다.

로리 갤러거가 숨진 뒤 이 원 기타는 공개될 일이 거의 없었는데, 21세기 기타 스타 조 보나마사의 2011년 영국 공연 때 갤러거의 가족이 이 기타를 쓰게 해 주면서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평소 갤러거를 존경해 온 보나마사는 자신의 공연을 갤러거의 곡 ‘Cradle Rock’으로 오프닝하면서 자신의 우상에 대한 경의와 가족에 대한 감사를 표시했다.

보노 이름 유래는 보청기 매장 ‘보나복스’
시사주간지 타임은 지난 9월 29일자 표지로 U2를 선택했다. 신보 ‘Songs of Innocence’ 발매에 맞춰 특집 기사를 다뤘는데 U2로서는 네 번째 타임 표지였다. 76년 이 밴드의 드러머 래리 멀린 주니어가 고등학교 때 ‘음악인 구함’이란 광고를 학교 게시판에 건 뒤 40년이 지난 지금 U2는 이제 세계 최고의 밴드가 됐다. 그들의 2009~2011년 세계 순회공연 ‘U2 360°’는 공연당 평균 무려 6만6110명의 관객을 끌어들이며 공연 역사상 역대 최고인 7억7000만 달러의 매출을 기록했다. 이는 흔히 우리나라 3대 연예기획사로 통하는 SM·YG·JYP 3사의 지난해 매출액 총합의 3배에 이르는 규모다.

더블린시내 중심부에 위치한 보청기 판매점 ‘보나복스(Bonavox)’는 U2의 보컬 보노가 이 매장에서 자신의 이름을 따 왔다는 얘기 때문에 골수팬들의 필수 방문지가 됐다. 본명이 폴 데이비드 휴슨인 보노는 원래 이 이름을 싫어했으나 보나복스가 라틴어로 ‘좋은 목소리’를 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 이 이름을 좋아하게 됐다.

보노와 더 에지 소유로 유명해진 더 클라랜스 호텔 옥상은 U2가 2000년 발표한 대표곡들인 ‘Beautiful Day’와 ‘Elevation’의 공연 뮤직비디오 버전이 촬영된 장소다. 물론 이 옥상공연은 비틀스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중앙SUNDAY 9월 28일자 런던의 비틀스 흔적들). 더블린시를 통과하는 리피 강변으로 4000여 명이 몰려와 촬영 장면을 지켜봤는데 뮤직비디오에도 이 장면이 잘 실려 있다.

록밴드 U2에 관한 낙서로 뒤덮인 ‘U2 낙서 담’.

더블린시에서는 ‘낙서가 보이기 시작하면 U2와 관련된 무언가가 있다’는 얘기가 있다. 대표적인 낙서는 하노버 부두 변에 위치한 U2 소유의 스튜디오 주변인데 온통 팬들의 낙서로 덮여 있어 아예 ‘U2 낙서 담’으로 불린다. 팬이라면 직접 낙서를 남기는 일도 좋은 추억으로 남는다. 더블린 최고층 건물이자 명소가 될 ‘U2 타워’가 세워질 장소는 바로 이 스튜디오 건너편의 부지다.

2011년 개관한 ‘더블린 소(小)박물관(The Little Museum of Dublin)’은 더블린시의 역사를 보여 주는 곳인데, 지난해에는 U2 팬들이 큐레이터 역할을 하며 꾸민 ‘U2 전시관’이 마련됐다. 밴드 경력에서 중요했던 소품들과 역사를 파악할 수 있는 곳으로 U2는 물론 일반 로큰롤 팬들에게도 인기가 많다. 지난해 말에는 박물관 관계자마저 눈치채지 못하게 소문 없이 와서 전시를 둘러본 뒤 조용히 떠나 주변을 놀라게 한 스타들이 있었는데, 바로 보노와 더 에지였다. 박물관 측은 이들이 다녀간 사실을 며칠 뒤 방명록에 남긴 서명을 보고 나서야 알게 됐는데, 보노는 ‘훌륭하다(Awesome)’는 짧은 글로 전시에 대한 자신의 소감을 남겼다.

필 라이놋 동상이 로큰롤의 랜드마크
더블린 음악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매력은 시내 중심도로인 그래프턴가다. 관광과 쇼핑의 중심 역할을 하는 이 길은 아일랜드 로큰롤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그래프턴이 해리가와 만나는 지점에 위치한 필 라이넛 동상이 대표적인 로큰롤 랜드마크다. 아일랜드가 자랑하는 록밴드 신 리지를 결성하고 이끈 보컬 겸 베이시스트 라이넛은 36세이던 86년 1월 4일 약물 과다복용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실물 크기 동상은 2005년 세워졌는데 같은 아일랜드 출신으로 국내에도 두터운 팬층을 가졌던 기타리스트 게리 무어 등 라이넛과 음악 활동을 같이했던 아티스트들이 대거 제막식에 참석했다. 신 리지의 대표곡 ‘The Boys Are Back In Town’은 지금도 큰 사랑을 받고 있다. 2012년 미국 대선 재선을 노리던 민주당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맞서 ‘공화당이 돌아왔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던 공화당 밋 롬니 후보는 이 곡을 자신의 대선 캠페인에 사용하려 했으나 그의 반동성 철학 등이 생전 라이넛의 철학과 맞지 않는다는 유족의 판단에 따라 곡 사용이 거절되기도 했다.

영화 ‘원스(Once)’의 배경으로 사용된 악기점 ‘월톤스(Waltons)’의 내부.

영화로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고 뮤지컬로도 제작돼 다음달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개막을 앞둔 ‘원스(Once)’의 배경이 된 곳도 그래프턴이다. 영화에서 남녀 주인공이 인기곡 ‘폴링 슬로우리(falling slowly)’를 부른 악기점 월톤스는 이 거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영화 성공 이후 하루에도 수백 명의 관광객과 팬이 몰려와 이 노래를 부르자 질린 악기점 측은 악기점 내에서 이 노래의 연주를 아예 금지시키기도 했다.

그래프턴가의 최대 매력은 그래도 역시 버스커(Busker)로 불리는 길거리 악사들의 연주다. 영화 원스의 주인공이자 가수인 글렌 핸사드나 아시아 국가로는 한국에서 첫 공연을 했던 싱어송라이터 데이미언 라이스도 모두 아일랜드 출신으로 무명 시절 이 길 어디에선가 버스커 생활을 했다. 무명이 아닌데도 크리스마스이브가 되면 이곳을 찾아 버스커 활동을 하는 스타가 있는데 U2의 보노다. 최근 들어서는 동료 스타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며 불우이웃 돕기 행사를 진행하는데 몇 년째 계속하다 보니 이제는 크리스마스이브가 되면 이 공연을 보기 위해 관광객들이 미리 그래프턴가에 나와 기다리는 장면도 연출된다.

버스커들에게 인기 있는 이 거리에서 공연하려면 사전에 더블린시에서 주관하는 오디션을 통과해야 한다. 음악거리 명소로서 관광객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높은 수준의 실력을 가진 버스커들을 선사하겠다는 깊은 의도다. 여기에 최근 유럽 대다수 대도시들이 소음과 쓰레기 등의 문제로 길거리공연을 제한하면서 그래프턴은 유럽 최고 실력의 버스커들이 가장 선호하는 장소로 부각되고 있다. 내일의 팝차트에 오를 스타들이 오늘은 크래프턴에서 땀 흘리고 있는 셈이다. 필자가 본 루마니아 출신의 한 버스커는 “우리가 설 자리가 점차 사라지고 있다. 버스커를 지지하고 더블린을 사랑해 달라!”고 호소한다. 더블린만큼은 아직 버스커들을 버리지 않았다. 더블린이 매력적인 음악도시인 또 다른 이유다.



조현진 YTN 기자·아리랑TV 보도팀장을 거쳐 청와대에서 제2부속실장을 역임하며 해외홍보 업무를 담당했다. 1999~2002년 미국의 음악전문지 빌보드 한국특파원으로서 K팝을 처음 해외에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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