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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흐름 매끄러운 『그대는』, 시조의 묘미 살려|『부침』은 관념으로 기운 듯하면서도 서정 안 잃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지난 20일 중앙일보사가 주최한 제l회 시조 문학 강연회가 대구에서 열렸을 때 청중들의 질문은 시조가 현대적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느냐는 것과 서정성에만 치우쳐 있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그에 대한 답은 시조는 우리 민족이 있는 한 함께 할 것이며 그 까닭은 시조는 지금까지 그 시대, 시대를 담아 오는 그릇이 되기에 넉넉하였다는 것과 옛 시조만 보더라도 서정성보다는 사회성과 정치성을 담은 작품이 더 많이 씌어졌음을 밝혔다.
「그대는」은 말의 흐름이 물살같이 매끄럽다. 시조의 정해진 자수를 지키지 않았다고 이의를 달지 모르나 시조의 정형은 기본이고 그 기본에서 넘낮이를 허용하고 있는 것이 또한 시조의 묘미다.
「부침」은 시가 관념 쪽으로 기운 것 같으면서 서정성을 잃지 않은 조화를 안고 있다.
그러나 「차라리 역으로와」는 억지스럽다. 「차라리 거슬러와」해도 될 일이 아닌가.
「꽃밭에서」는 꽃의 생성 과정에다 의미를 부여하는 매우 익숙한 기량을 보인 작품이다. 그러나 친야가 한정되어 있는 느낌이고 호흡의 뜨거움이 없는 것이 결함이다. 「어머니」를 지은이는 열성적으로 작품을 생산해 보내온다. 그만큼 시의 진경도 보인다. 그러나 「속품」 「은혜 빛」등 조어는 설득력을 잃고 있다. 재고 있기를.
「새 3」은 전에도 지적했지만 현대적 어법과 감각이 뛰어나다. 세기를 조금만 더 가다듬는다면 좋은 시인 하나를 우리 시단은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첫사랑」은 너무 상식적인 느낌을 상식적으로 처리한 작품이다. 조금 더 아픔과 진실 속에서 조개가 진주를 만들 듯 오랜 인고를 치른 다음에 써야하지 않을까?
「현충일에」는 시의에 맞춘 작품인데 뜻은 높이 살아있지만 「심전」「단계」 등 딱딱한 한문 투어를 비롯해서 너무 시가 직설적인 것이 거슬린다. 몇번 더 말의 껍질을 벗겨보도록.
이밖에도 「새알」은 단수로서 어지간히 만들어 냈으나 종장에서 감칠맛을 잃고 있다.
앞으로 더욱 정진하기를 바란다. 이근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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