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 전력 송전 발표 이후] '안중근 계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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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 해결을 위한 대북 송전 구상이 정부 내에서 싹튼 것은 올 1월이었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의 이종석 사무차장과 외교안보부처 핵심 관계자들이 '경수로 처리' 문제를 연구하던 중 잔여 비용을 통한 전력 공급이라는 아이디어가 거론됐다. 노무현 대통령에게 이 구상이 처음 보고된 것은 2월 15일. 닷새 전인 2월 10일 북한 외무성이 '핵 보유 및 6자회담 불참'을 선언해 돌파구가 절실한 상황이었다.

철통 보안을 위해 프로젝트의 코드명은 '안중근 계획'으로 불렀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붙인 이름이다. "'안중근 계획'과 전력 공급을 연관시키기가 쉽지 않고, 남북 모두의 존경을 받는 인물이라는 점에 착안했다"는 설명이다.

'중대 제안'이 처음 거론된 것은 5월 16일 남북 차관급 회담차 금강산을 찾은 이봉조 통일부 차관이 "북핵을 포기하면 '중요한 제안'을 할 것"이라고 언급한 때였다. 당시 '중요한 제안'이라고 표현 수위를 낮춘 것은 "모두들 놀라 집중 취재의 대상이 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게 정부 측 설명이다. 노 대통령도 6월 13일 '6.15 공동선언 학술대회'에서 "6자회담이 열리면 북핵 문제의 실질적 진전을 위한 중요한 제안을 할 것"이라고 했다. 한 청와대 관계자는 "중대 제안이 대북 송전임을 알고 있던 인사는 발표 전날까지 열 손가락을 넘지 않았다"고 했다. 정부 측은 한전 관계자들에게 기술 문제를 자문하면서도 "경수로 처리 때문"이라고 연막을 피웠다.

북한에 대한 첫 통보는 6월 17일 정동영 장관이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난 자리에서 이뤄졌다. 우리 측은 김 위원장 면담이 아니면 6자회담 재개 합의 전까지는 북측에 내용을 알리지 않는다는 방침을 세웠다.

한 고위 관계자는 "주어진 틀 안에선 거침없이 말을 하는 김 위원장도 '대북 송전'은 생각하고 있지 않았던 것 같다"며 "그래서 신중히 검토해 답을 주겠다고 한 것"이라고 했다. 정 장관은 김 위원장에게 "북.미관계 개선을 위해 유연하고 실용적인 시각의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를 적극 활용하라"고도 제안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에는 6월 18일 이종석 차장이 방한 중인 힐 차관보에게 처음 그 내용을 설명했다. 발표 전 국제적 보안에 긴장이 생긴 사건도 있었다. 9일 워싱턴 포스트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을 인용해 "한국이 북측에 원자력 발전을 제외한 대규모 종합 에너지 지원을 위한 자금조달 지원을 제안했다"는 윤곽의 보도가 났기 때문이었다.

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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