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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투데이

아프리카 지원 '퍼주기'론 안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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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국제사회의 최근 화두는 아프리카 돕기다. 팝송을 부르는 성자로 유명한 밥 갤도프는 지난주 G8(선진 7개국+러시아) 정상회의가 열린 스코틀랜드에서 아프리카 돕기 자선 콘서트를 열었다. 약 200만 명이 콘서트에 모였다. 또 TV를 통해 이를 시청한 사람은 20억 명에 달했다.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서방 국가들에 아프리카를 돕기 위한 원조를 늘려 달라고 호소했다. 유엔도 아프리카 빈국을 돕기 위해 선진국들이 매년 250억 달러를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역사적으로 아프리카를 지원한 성적표는 좋은 편이 아니다. 두 개의 통계수치만 들어 보자. 이집트나 리비아 이남 아프리카 국가의 평균수명은 1980년대 이래 줄곧 뒷걸음질쳤다. 우간다의 평균수명은 45세에 불과하다. 1인당 소득도 하락했다. 80년대 2000달러이던 아프리카 국가들의 소득은 이제 1700달러에 불과하다. 이 통계의 의미는 자명하다. 아프리카 국가에 대한 대규모 원조와 현지인의 삶의 수준 향상과는 별로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또 다른 예를 보자. 영화 '원초적 본능'으로 유명한 할리우드 영화배우 샤론 스톤은 1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 회의장에서 즉석 모금에 나섰다. 말라리아로 죽어가는 아프리카의 불쌍한 어린이를 위해 모기장을 구입해 전달하자는 것이었다. 아름다운 취지다. 그러나 문제는 이 취지가 현지에서는 본뜻을 살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선진국들은 과거 똑같은 이유로 나이지리아에 모기장을 원조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 모기장 원조가 현지의 모기장 제조업체를 도산시키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정부가 공짜로 모기장을 주는데 누가 돈을 주고 모기장을 구입하겠는가. 또 모기장을 제대로 사용하려면 살충제를 가끔 뿌려줘야 하는데 현지인들은 이를 잘 몰랐다. 시간이 지나면서 서방국이 제공했던 모기장들은 나이지리아 신부들의 결혼식 가운으로 둔갑했다.

현재 아프리카 빈민국의 정부 예산 중 20%는 선진국 원조로 충당되고 있다. 문제는 선진국의 '공짜 돈'이 아프리카 국가의 부정부패를 부추기는 것은 물론 자립심을 약화시킨다는 점이다. 최악의 경우 외부 지원금은 무기 구입에 전용돼 전쟁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전쟁은 경제개발을 가로막는 최악의 장애물이다.

외부의 원조는 또 현지 산업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에티오피아가 대표적인 경우다. 80년대 서방세계는 에티오피아의 전쟁난민을 돕기 위해 수백만t의 곡물을 지원했다. 그 결과는 에티오피아 곡물생산을 종식시키는 참담한 결과로 이어졌다. 의료지원도 마찬가지다. 선진국들은 우간다의 만성적인 말라리아와 에이즈를 차단하기 위해 엄청난 의료기구를 지원했다. 그러나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지원물자의 75%가 현지 시장으로 흘러나오거나 현지 관리의 호주머니 속으로 들어간 것으로 나타났다.

아프리카 지원이 100% 실패한 것은 아니다. 90년대 초 세계은행은 우간다 학교에 자금을 지원했다. 그러나 원조 자금 중 13%만 현지 학교에 지원됐고 87%는 부패 관리들이 착복했다. 현지 언론이 이를 보도하자 격렬한 시위가 벌어졌다. 이 사건 이후 원조 자금의 대부분은 학교에 어김없이 전달된다.

아프리카 지원의 핵심은 돈의 규모가 아니라 돈의 유통경로와 쓰임새다. 아프리카 현지의 형편없는 시스템을 내버려둔 채 돈을 쥐여 주는 것은 그야말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아프리카를 도우려면 제대로 도와야 한다. 특히 시장이 작동하게끔 지원해야 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적 부흥을 이룬 한국.중국.베트남 등도 시장을 통한 개혁과 번영에 성공했다. 아프리카 지원의 열쇠는 돈이 아니라 시장이다.

요제프 요페 독일 디 차이트 발행인
정리=최원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