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용돈 이상의 생활비 매달 꼬박꼬박 받으면 ‘자식연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6면

‘배우자 또는 직계존비속에게 양도한 재산은 증여받은 것으로 추정한다’.

 이 세법 조항을 근거로 세무당국은 부모와 자녀 간의 거래를 일단 ‘증여’로 보고 세금을 매긴다. 이에 따라 부모가 자녀에게 아파트 등 주택을 넘길 경우 세율이 최고 50%에 달하는 증여세를 물어야 한다. 하지만 대법원이 생활비를 매달 꾸준히 지급한 뒤 부모 소유의 집을 넘겨받는 ‘자식연금’에 대해 주택연금과 유사한 만큼 증여가 아닌 매매로 봐야 한다는 확정판결을 함에 따라 변화의 가능성이 생겼다. 집이 전 재산인 노령층이 자녀에게 부양 받으며 집을 넘겨줄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매매로 인정받을 수 있는 조건을 문답으로 풀어봤다.

 - 명절에 부모님께 드리는 용돈도 참작되나.

 “아니다. 주택 매매의 대가로 부모에게 매달 정기적으로 돈을 줬다는 사실이 객관적으로 증명돼야 한다. 명절 때 용돈은 주택 매매 대가로 인정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 부모 입원비를 대신 낸 경우는.

 “송금 목적이 다른 용도와 겹쳐선 안 된다. 서울행정법원은 올해 초 김모씨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아파트 입주권의 대가로 매월 100만원씩 6년4개월간 돈을 보냈다’며 낸 증여세 취소소송에서 김씨 청구를 기각했다. 아버지에게 빌린 돈을 갚은 것이란 정황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입원비를 댄 것은 자식으로서 부양 의무를 다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 어느 정도나 지급해야 하나.

 “주택 가격과 비슷한 수준이어야 한다. 이번 판결에서 법원이 인정한 생활비 등 송금 총액은 1억3110만원이고, 해당 아파트 과세 기준 가격은 1억6100만원이었다. 집값이 더 비싸다면 그에 비례해 더 많은 금액이 지급돼야 한다. 또 한 번에 지급하는 금액이 너무 적어도 안 된다. 미풍양속에 따라 부모를 부양하는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주는 돈으로 인식될 수 있다. 자신의 경제적 형편에 비춰 부담이 갈 정도는 돼야 한다.”

 - 그래도 증여로 볼 여지가 있지 않나.

 “주변 정황이 중요한 판단 요소다. 법원은 ‘부모가 아파트를 담보로 상당한 빚을 진 상태에서 빚을 다 갚아줬고 생활비 형태로 나머지 가격을 부담해 결국 아파트 소유권도 넘겨받았다’는 주장을 받아들였다.”

 - 직장을 그만두고 고정적 수입이 없었다면.

 “매매로 인정받기 힘들다. 직장생활을 통해 주택을 살 정도의 돈을 벌었다든가 아니면 적어도 그 정도의 재산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입증해야 한다. 이번 사건에서도 10년 넘게 보험설계사로 일하면서 많을 때는 억대 연봉을 벌었다는 점이 고려됐다. 부모에게 보낸 생활비의 출처가 자신의 재산임을 입증해야 정당한 대가를 치른 것으로 보는 것이다.”

 - 반드시 계약서가 필요한가.

 “쓰는 게 낫다는 게 세법 변호사들의 판단이다. 이번 사건의 경우 계약서가 없어 은행거래 내역 등으로 입증했다. 계약서가 있었다면 더 쉽게 인정됐을 가능성이 크다. 생활비를 부담해 놓고 상당 기간이 지난 다음 증여받는 경우 갑자기 그간의 상황을 입증하기가 쉽지 않다. 매달 일정 금액을 드리는 조건으로 추후에 집을 물려받는다는 내용의 계약서를 만들어 놓으면 입증이 한결 쉬워질 것이다.”

 - 소유권 이전 등기는 언제 해야 하나.

 “가급적 상당한 시간이 흘렀을 때가 낫다. 계약서를 만든 뒤 곧바로 소유권 이전 등기를 하면 세무서에서도 믿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최소 수년이 지난 뒤 어느 정도 총액이 집 가격과 비슷해진 시점에 물려받는 게 ‘증여’라는 오해를 받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다.”

박민제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