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이 경쟁력이다] 전남 장성군 삼서면 '잔디 농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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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남 장성군 삼서면 주민들이 일정한 크기로 잘린 잔디를 묶고 있다. 생육이 왕성한 장마철에는 잡초를 뽑고, 비료를 주는 등 눈코 뜰 새가 없다. 장성=양광삼 기자

전남 장성군 삼서면은 어디를 가나 길 양쪽 곳곳에 녹색 카펫을 깔아 놓은 듯 파란 잔디밭들이 펼쳐져 있다. 임야는 물론 논에도 벼 대신 잔디가 쫙 깔려 있다.

"7년 전부터 벼농사를 그만두고 잔디농사를 하는데 소득이 갑절 이상 나오제." 수해리에 있는 잔디밭 1400여평에 비료를 뿌리던 심상욱(69)씨는 "벼농사보다 훨씬 낫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4월 평당 6200원씩 870만원을 받고 1년 동안 키운 잔디를 팔았다. 심씨는 4년 전부터 밭 1000평에도 감나무를 뽑아내고 잔디를 심고 있다.

삼서면 주민들이 잔디 농사로 짭짤한 소득을 올리고 있다. 장성군에 따르면 잔디 300평당 순소득은 118만8000원인데 비해 벼는 60만3000원이다.

◆ 벼농사보다 두 배 이상 벌어=한창 더운 요즘이 일년 중 가장 바쁜 때.잔디 생육이 왕성한 장마철을 맞아 웃자라지 않도록 자주 깎아 주고,잡초를 뽑고, 비료를 주는 등 눈코 뜰 새가 없다. 보통 잔디 재배 농민들은 한 해에 한 번 수확한다. 그러나 '프로'들은 물 관리가 원활한 논에 잔디를 심고 계속 보식하고 자주 깎아 웃자라지 않고 옆으로 번지게 해 두 해에 세 차례 잔디를 떠 낸다. 소득도 그만큼 늘어 벼농사의 세 배 이상을 거둔다.

삼서면사무소의 문경희(52)산업계장은 "올해만도 어림잡아 스무 농가 20㏊ 이상의 논이 벼에서 잔디 농사로 돌아섰다"며 "우리 지역 농민들은 쌀값 하락 등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는다"고 말했다.

수해1리 이장 김갑수(55)씨는 "잔디 영농조합 7개가 남의 땅까지 빌려 대규모로 재배하다 보니 다른 농촌과 달리 농사를 포기하고 방치한 땅이 없다"고 말했다.

삼서면은 모두 1122가구가 1805㏊에 농사를 짓는데, 이 중 844가구가 676㏊에 잔디를 심고 있다.농민 4명 가운데 3명 꼴로 잔디를 기르는 셈이다. 잔디는 묘지.골프장.축구장.공원.정원과 아파트.도로 공사장 등에 공급된다. 전국 잔디 시장의 70% 정도를 이곳에서 공급하고 있다.

가격이 높을 때는 평당 7000원이었다.평균 평당 5000원으로 계산할 경우 삼서면 잔디 농민들이 손에 쥐는 돈은 100억원가량이다. 여기에다 상인들이 농민들로부터 매입한 잔디를 수확.출하하면서 지출하는 작업비용 평당 2300원 안팎을 합치면 잔디농사로 인한 직접 수입은 모두 146억원이 넘는 셈이다.

◆ 삼서 잔디=삼서면은 1968년 극심한 가뭄 이후 대규모 잠업단지로 지정받아 야산과 밭에 뽕나무를 심고 누에를 쳤다.그러나 70년 대 후반 양잠산업이 쇠락해 대체작목을 찾던 중 면장을 지냈던 정찬길(94년 작고)씨 등 세 명이 81년 석마리.금산리의 개간지와 밭 3000~5200평씩에 잔디를 심었다. 이웃 사람들은 "정신이 나갔다"고 비웃었다.

그러나 잔디가 건설현장 등에 팔려 고수익을 올리자 하나 둘씩 뽕나무를 캐 내고 잔디를 따라 심었다. 잔디를 구할 곳이 없어 도로 변이나 하천 둑 등에 자생하는 잔디를 떼어다 번식시켰다.

86년 아시안게임과 88년 서울올림픽 때 수요는 크게 늘면서 잔디가 달려 값이 폭등했다. 땅을 빌려 농사지은 이들이 잔디를 팔아 그 땅을 살 정도였고, 경지정리가 이뤄진 논에까지 잔디 재배가 확산했다.

삼서 잔디의 성공은 토질 덕도 컸다. 황토와 모래가 섞인 땅에서 생산한 잔디는 뿌리가 튼튼해 발근이 빠르고 어디에 옮겨 심든 잘 산다. 훼손된 뒤 재생력이 강할 뿐만 아니라 골프장 그린처럼 낮은 깎기에도 잘 견디고 새 잎의 밀도가 높아 잡초의 침입이 어려운 것도 삼서 잔디의 장점이다.

잔디 농사를 맨처음 시작했고 지금도 하고 있는 봉만기(59.전 삼서농협 조합장)씨는 "새 작목을 발굴해 지역 농민들이 25년간 꾸준하게 괜찮은 소득을 올리는 데 일조한 것에 대해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봉씨는 "잔디를 재배하는 데 그치지 말고,면 전체를 뒤덮다시피하는 잔디밭을 활용해 지역축제도 열어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방법을 강구해 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장성=이해석 기자 <lhsaa@joongang.co.kr>
사진=양광삼 기자 <yks233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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