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 3류 대회 출전…망신 자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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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피로와 불쾌감만 얻었을 뿐 소득은 없었다. 3류 대회를 빛내 줌으로써 태국에 대한 외교적 성과가 있었다고 자위나 할 수밖에 없다.
17일 태국 방콕에서 벌어진 제15회 킹즈컵 국제축구대회의 결승전에서 한국대표 화랑은 태국 A팀과 연장전을 포함한 1백 20분간의 경기를 득점 없이 비기고 승부차기에서 4-3으로 패배, 준우승에 그쳤다.
화랑은 시종 우세를 보이고도 결정타가 끝내 불발했으며, 승부차기에선 최순호 이강조 정해원 등 철석같이 믿었던 주전들이 실축, 자멸했다.
화랑은 후반 30분 최순호가 골인시켰으나 주심이 오프사이드를 선언, 통분해 했으나 오히려 전반 40분 태국선수의 결정적 강슛이 골포스트를 때리는 바람에 기적적으로 실점을 모면하는 행운이 더 컸다.
화랑은 주전 링커 조광래가 2차례의 경고를 받아 이날 결장한 것이 전력에 펑크를 초래 결정적 득점 기회를 만드는 능력이 급격히 저하됐다. 플레이메이커 조광래 한 선수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칠 정도로 큰 화랑의 구조적 취약점을 여실히 드러낸 일전이었다.
화랑은 2차 예선리그 때 태국A팀을 3-0으로 완파한 바 있으며, 따라서 전력의 현격한 열세에도 최후의 결전에서 선전 분투한 태국의 투지와 정신력은 높이 살만하다.
이런 현상은 한국축구가 비공식 친선대회에선 아시아의 왕자로 군림하다가 올림픽과 월드컵의 예선에선 말레이시아 등의 일격에 허물어지고 마는 고질적 병폐와 좋은 대조가 된다.
화랑이 이번에 예선에서 대승하고 결승에선 패배한 것도 똑같은 생리의 되풀이다.
화랑이 『이기는 것이 당연』했던 한 수 아래의 태국과 벌인 답답한 경기가 전국에 TV로 우주중계까지 되었으니 흑서에 고생만 한 선수들 못지 않게 국민들의 불쾌지수만 드높여 놓은 것이 이번 대회였다.
특히 축구의 경우 해외 원정팀과 TV중계의 선별(선별)이 신중히 고려되어야 한다는 여론이 드높다.
킹즈컵 대회에서 한국은 재작년 13회까지 단독우승 7번, 공동우승 l번, 준우승 1번의 독주를 했으나 작년 충의팀이 나가 북한에 2-0으로 져 예선탈락을 했고 올해는 북한의 출전을 예상, 화랑이 용약 나섰으나 결과적으로 다시 준우승에 그치고 말았다.<박군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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