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다지」는 옛말 중동건설 한물가|「공영」이 장 여인에 휘말린 속사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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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황금 알을 낳는 거위」로 비유되면서 한동안 호황을 누리던 해외건설업이 국내외의 여건변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동제국이 오일달러의 감소와 강력한 자국화정책을 내세워 수주활동도 어렵고 대금지불조건도 까다로워지고 있는 것이다. 이번 장 여인 사건에 관련된 공영토건도 해외건설에서 꼬이면서 자금난을 겪어 왔다. 해외건설에서 빚을 지고 회사의 재무구조가 휘청하면서 장 여인의 돈을 빌어 쓴 것이 도화선이 된 것이다.
공영토건은 77년 중동의 한 산유국에 들어갔다가 지난해 밑천도 못 건지고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공영이 이 나라에서 말은 공사는 주택건설공사 3천5백만 달러 짜 리와 국가통제센터(NCC)의 전력·수도공사 1천만 달러 등 4천5백만 달러 짜리.
78년부터 시작해 작년 3월과 5월에 각각 공사를 끝냈으나 상대국이 공사준공과정에서 부실공사라는 이유를 내세워 계속 클레임을 걸어 공사비의 50%밖에 받지 못하고 철수했다는 것이다.
공영은 이곳에서 적자를 보고 이웃의 다른 산유국에서도 4억 달러 짜리 주택공사를 맡았으나 역시 중간의 설계변경과 까다로운 준공절차로 공사진척에 따라 받게 돼 있는 기성대금을 제대로 받지 못해 결정적으로 재무구조가 흔들린 것이다. 이때 이·장부부가 나타나 자금지원을 자청했고 변 사장은 다급한 판에 이 미끼를 받아먹었다는 것이다.
해외건설진출여건은 그동안 해마다 조금씩 나빠져 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중동 각 국이 강력한 자국화정책을 내세워 급격히 악화됐다는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우리나라 업체들이 가장 골탕을 먹고 있는 중동의 자국화정책은 첫째 공사비 에누리. 예를 들어 공개경쟁입찰에 붙여 놓고 우리나라 업체가 최저입찰자로 낙찰되면 그대로 공사를 맡기는 것이 아니라 여기서 다시 흥정을 걸어와 10%정도 공사비를 깎는 것이다.
만일 여기에 응하지 않으면 다른 업체에 공사를 뺏기게 되므로 대부분의 업체들이 이를 감수하는 도리밖에 없는데 이렇게 되면 처음부터 적자를 안고 들어가는 것이다.
일부 국가에서는 최저입찰자로 낙찰돼도 슬쩍 젖혀놓고 자국의 업체에 공사를 맡긴다.
둘째는 공사의 시공·감리·준공절차를 까다롭게 해 걸핏하면 클레임을 걸고 공사대금지불을 지연하는 것. 전에는 한국에 공사를 맡기면 자국감독이 나오거나 한국업체에 모두 맡겼으나 최근에는 유럽이나 레바논·이집트 등의 감독을 채용, 이를 데 없이 까다롭게 군다는 것이 업계의 이야기다.
때로는 설계변경을 요구하고 자재 하나 하나에 이의를 제기하는 일이 잦아 손해를 안볼 도리가 없다는 것.
중동 각 국은 현재 외국의 건설자재나 상품을 들여올 때 반드시 자국의 무역대리인을 통해 들여오도록 수입제한을 하고 공사에 자국 산 자재의 의무적인 사용비율을 높여 가고 있는데 이 때문에 진출업체들은 공사에 지장을 받고 수익률도 크게 떨어지고 있다.
노동집약 공사의 단가를 표준화시켜 미장·콘크리트·철근 등 단순한 토목건축의 임금을 일정 선에 묶어 놓고 있다. 인력 수급에서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노동자의 입국 비자를 제한하고 있어 공사촉진에 막대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다.
공사를 맡기면 그에 따른 인력조달도 자연 인정이 돼야 하는데 한 업체에 하루평균 10∼20여명씩밖에 비자를 내주지 않아 인력난을 겪는다. 중동 각 국은 자국노동자나 인근국가의 노동자를 쓰도록 하기 위한 시책이지만 우리로서는 어려움이 많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일부국가에서 공사비의 20%를 미리 주는 선수금제도를 없애고 있어 만일 이것이 각 국에 의해 모두 채택된다면 결정적인 타격을 입을 것이 분명하다.
이 같은 자국화 정책에 의해 우리나라 업체의 수익률은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최근 관계기관이 조사한 보고에 따르면 76년의 이익률(공사 매출액에 대한 순이익)이 15.2%이었으나 80년에는 6.5%로 절반이하로 떨어졌다. 이것은 물론 우리 업계의 과당경쟁으로 인한 요인도 있으나 중동 각 국의 공사비 에누리·임금단가의 인하·클레임 등으로 인한 것이 절대적이다.
적자공사도 해마다 늘고 있다. 79년에는 시공 액의 8.8%가 적자로 나타났으나 80년에는 9.7%, 81년에는 9.9%, 올해는 10%가 넘을 것으로 보인다.
또 하나 심각한 것은 자금이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같은 해외건설의 수주·공사·대금수입조건의 악화는 저 유가가 계속되는 한 더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업계는 건설부와 해외건설협회에 SOS를 치고 있다. 만일 이를 그대로 방관한다면 중동진출건설업은 벽에 부닥칠 것이라는 것이다.
최근 김종호 건설장관이 7개국 20여 개의 공사현장을 둘러보고 근로자들을 격려했으나 업계는 근로자 격려보다 상대국과의 협상을 통해 공사여건을 개선해 줄 것을 바라고 있다.

<신종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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