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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책읽기] 왜 몰래 하지? 왜 사시사철 하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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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섹스의 진화
제러드 다이아몬드 지음, 임지원 옮김
사이언스 북스, 291쪽, 1만3000원

잠시 사람 중심의 시각을 접고, 개의 눈높이에서 우리 행동을 살펴보자.

"인간은 참으로 구역질나는 짐승이다. 여자는 생리 직후 등 뻔히 임신할 수 없는 상태인데도 남편을 유혹한다. 남자는 아이를 만들 수 있을지 없을지 따지지 않고 허구한 날 부인에게 달려든다. 심지어 부인이 임신을 하고 있을 때도 말이다. 심지어 폐경으로 아이를 낳을 수 없어도 중단하지 않는다. 우리 개들은 새끼 낳을 일 아니면 그런 힘든 일은 사양한다. 진짜 이상한 건 다들 문을 걸어놓고 아무도 모르게 섹스를 한다는 점이다. 우리들 자존심 센 개라면 누구든 떳떳하게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관계를 가질 텐데 말이다."

맞는 지적이다. 아이를 낳을 의도가 전혀 없는 섹스, 폐경, 남이 보지 않는 곳에서 은밀히 이뤄지는 섹스 등 사람에겐 지극히 자연스러운 섹스 습성이 다른 동물에겐 아주 놀라운 일이다. 그만큼 사람의 섹스 습성은 동물계에서 아주 독특하다. 인간은 쾌락 목적으로 섹스를 하는 거의 유일한 동물이다. 섹스 습성도 다른 동물과 비교할 때 한마디로 괴상하기 짝이 없다.

진화생물학자인 지은이는 모든 생물의 섹스 습성은 종족 보전에 가장 적합한 생물학적, 생태학적 적응의 결과로 본다. 그는 이런 관점에서 인간의 섹스 습성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파고든 끝에 기막힌 결론에 이른다.

즉 인간은 자립 전 다른 어떤 동물보다 오랫동안 부모의 보살핌을 받아야하기 때문에 이런 섹스 습성이 생겼다는 것이다. 긴 육아 기간 동안 여자가 남자를 계속 붙잡아두기 위해 쾌락을 위한 섹스가 생겼다는 것이다. 쾌락을 위한 섹스는 부모를 긴밀하게 결합하는 수단이라는 주장이다. 하긴 인간처럼 암수가 짝을 지어 새끼를 키워가며 계속 함께 사는 동물도 그리 많지 않다. 심지어 한 수컷이 자기의 집단 내 다른 새끼들보다 특별히 더 돌보거나 보호해주는 경우도 찾아보기 어렵다.

이 책에서 눈길을 끄는 것의 하나가 섹스 어필에 관해 지은이가 펼치는 일련의 주장들이다. 왜 헬스클럽에서 몸매를 가꾸는지? 건강을 위해서? 그게 이유의 전부일까? 자신의 지금 짝이나 앞으로 나타날 짝에 매력적으로 보여 유혹하려는 게 목적은 아닌지. 그는 동물은 이성에게 자신의 자질에 대한 총체적인 신호를 보내면서 자신을 광고한다고 강조한다. 이 신호가 통해야 서로 눈이 맞게 된다는 것인데 그 신호란 게 결코 맹목적인 게 아니다. 예로 수사슴이 매년 갈아치우는 우람한 뿔은 성숙하고 사회적으로 지배적 위치에 있으며 기생충이 없어 영양상태가 좋은 놈만 가질 수 있다. 따라서 암사슴은 수사슴의 뿔을 수컷의 자질을 드러내는 광고로 간주한다. 고급 포르셰 스포츠카를 매년 갈아치우는 친구를 이상적 배우자로 여기는 것과 마찬가지다. 포르셰는 더 많은 돈을 만들지 못하지만 뿔은 경쟁자와 이겨 더 많은 목초지를 차지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차이가 나긴 하지만.

남성의 근육도 하나의 신호다. 전통사회에서 음식 같은 자원을 그러모으고 집과 같은 자원을 생산하며 경쟁자인 다른 남성들을 물리치게 해주었다. 그래서 여성은 이를 하나의 신호로 파악한다.

여성의 경우 아름다운 얼굴이 하나의 신호라는 게 지은이의 주장이다. 노화와 질병, 상해 등에 의한 파괴에 민감한 얼굴은 전통 사회에서 건강상태를 나타내는 하나의 광고판과도 같다는 설명이다. 또 여성에겐 지방이 신호 역할을 한다. 지방은 임신과 수유에 필수적이다. 그래서 지은이는 남성이 자연스럽게 적절한 지방을 가진 여성을 선호했다는 가설을 내놓는다. 지방이 너무 적으면 수유에 실패해 후손을 얻기 힘들어지고 지나치게 많으면 걷기에 불편해 먹을 것을 구하는 채집활동에 불리하다. 그러나 지방이 온몸에 고루 퍼져 있다는 걸 쉽게 눈으로 확인하기는 어려우니 눈에 잘 보이는 부위에 집중하도록 진화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래서 가슴과 엉덩이에 지방이 몰리는 경향이 생겼다는 것이다.

남녀평등론자에겐 거슬리겠지만 지은이는 암수 모두 보다 좋은 후손을 많이 얻겠다는 목적은 같지만 그 방법은 다르다는 논리를 편다.극소수의 예를 제외하고는 동물의 수컷은 여기저기 후손을 퍼뜨리기에 바빠 후손을 돌볼 틈이 없기 때문에 '자녀 부양'은 전적으로 암컷의 몫이다. 그 극소수에 사람이 들어간다.

세계적 과학교양서 시리즈인 '사이언스 마스터스'시리즈 중 첫 책으로 지은이는 진화론자이자 생리학자, 문명사가로 1998년'총, 균, 쇠'로 퓰리처 상을 받은 바 있다.

채인택 기자

*** '사이언스 마스터스' 시리즈 다른 책들

.원소의 왕국 (피터 앳킨스 지음, 김동광 옮김, 272쪽)

주기율표에 실린 109개 원소의 내부 구조에 대한 정보와 표의 형성 역사. 근본 원리까지 풀어낸 흥미진진한 이야기.

.마지막 3분 (폴 데이비스 지음, 박배식 옮김, 280쪽)

우주 종말이 언제, 어떻게 올지 현대 물리학의 최신 성과와 상상력을 바탕으로 그려낸 우리의 미래와 운명에 대한 시나리오.

.인류의 기원 (리처드 리키 지음, 황현숙 옮김, 304쪽)

생생한 현장 연구 경험이 녹아든, 화석을 찾아 다니는 사람들과 그들이 밝혀낸 인류 진화의 역사 이야기.

.세포의 반란 (로버트 와인버그 지음, 조혜성 외 옮김, 284쪽)

유전자가 정상 세포를 암세포로 바꾸는 메커니즘을 발견한 세계적 과학자가 들려주는 암의 비밀과 암 치료연구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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