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기도면 어떤 어려운 문제도 풀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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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정말 뜻밖입니다. 훈장을 받을만큼 일을 한 것도 없는뎨….』
한국SOS어린이마을(고아원)총재 이프란치스카(본명「프란치스카·레마이어」) 여사.
이탈리아에서 건너와 20여년을 한국고아를 위해 헌신한「SOS마을의 어머니」는 한국식 겸양으로 수상소감을 대신하며 소녀처럼 볼을 붉힌다.
60번째 어린이날,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은 벽안처녀 이총재의 나이도 만60세. 환갑이다.
지난62년 국제SOS마을 한국지부의 책임자로 한국에 온 뒤 20년을 불우한 어린이들의 어머니로 살았다.
그의 손을 거쳐간 어린이가 2천여명. 40대의 사회중견도 여럿이다.
『SOS어린이마을이란 부모를 잃었거나 버림을 받고 곤경 속에 빠진 어린이 6∼8명씩을 묶어 어머니를 정해서 새로운 사랑의 보금자리를 마련해주는 사업입니다.』
SOS란 『Save Our Souls』(우리들의 영혼을 구원해주소서)의 머리글자를 딴 약자. 2차대전후 오스트리아에서 「헤르만·그마이너」박사(63)에 의해 시작된 새로운 방식의 고아원 운동이다.
이 제도가 우리나라에 수입된 것은 62년. 천주교 대구교구 서정길 대주교가 오스트리아 유학중 이 운동을 보고 「그마이너」박사와 협의, 그해 SOS 어린이마을을 대구에 설립했다. 그때 이여사가 책임자로 파견된 것.
『고향서 신학교를 졸업하고 교회에서 하는 사회사업관계 일을 하던중 한국에 선교사로 가있던 학교후배 하 마리아로부터 제의를 받았어요. 한국에 오지 않겠느냐구요.
왠지 마음이 끌렸어요. 하느님의 뜻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한국의 SOS어린이마을은 20년동안 대구한곳에서만 운영돼왔다.
『국가나 사회사업가들에게 하나의 본보기로 운영하는 것인데 그다지 알려지지 못한 것 같아요. 아마 지방에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돼요.』
그래서 재작년 세계어린이의 해에 이총재는 국제본부와 협의, 서울과 순천 두 곳에 어린이마을을 더 짓기로 했단다., 지난해 착공, 3일 개원한 15가구의 서울(강서구 신월동 산156의7)어린이 마을과 7일 개원예정인 10가구의 순천어린이마을로 한국의 SOS어린이 마을은 세 곳에 40가구로 늘어나게 됐다. 이를 본보기로 더 많은 이런 방식의 시설이 생겨났으면 하는 것이 이총재의 가장 큰 바람.
이번 서울·순천마을을 짓는데 든 20여억원은 대부분 독일 등의 SOS후원단체에서 모금해 충당했다.
SOS마을이라고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사랑을 쏟아도 자꾸만 비뚤어지려는 어린이가 적지 않았어요. 고민하고 기도하다 남몰래 우는 일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결국 사랑과 기도 앞에는 어떠한 문제도 풀린다는 것이 이총재의 굳은 신앙이다.
주위에서는 올해 환갑인 이총재의 환갑잔치를 9일 대구 집에서 가질 예정. 이총재는 앞으로도 한국에서 일하다 한국에서 뼈를 묻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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