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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럭시 쇼크, 엔저 폭탄 … “내년 경영계획 못 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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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이달 30일부터 1박2일간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한·일 재계회의가 열린다. 재계 단체인 전국경제인연합회와 일본 게이단렌(經團連)이 주최해 2007년 11월 이후 7년 만에 재개되는 행사다. 두 나라 재계 리더들이 대거 회동하는 ‘잔치’인 셈인데 행사를 맡은 국내 실무진은 시름이 깊다. 한국 재계를 대표할 회장단을 구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전경련 관계자는 “사카키바라 사다유키(게이단렌 회장) 도레이 회장 등 20여 명의 일본 측 참석자 명단이 넘어온 상태”라며 “국내에서는 아직 참석자를 확정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입원 중인 이건희 삼성 회장, 구속 수감된 최태원 SK㈜ 회장을 비롯해 구조조정·재판 이슈 등으로 사실상 ‘총수 부재 중’인 기업이 재계 30대 그룹 중 12곳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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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28~29일 경기도 용인에 있는 SK아카데미에선 SK그룹 사장단 30여 명이 최고경영자(CEO) 세미나를 진행했다. 그룹 수뇌부가 내년도 사업 방향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SK 관계자는 “(신사업 검토 대신) 총수 부재 장기화, 글로벌 경기 부진 같은 위기 대응에 대한 얘기가 길어졌다”고 말했다.

 익명을 원한 대기업 임원은 “이것이 요즘 재계의 자화상 아니겠느냐”고 되물었다. 정부가 투자를 독촉하고 있지만 안에선 사업 구상조차 어렵고, 밖으론 명함 내밀기가 부담스러운 게 재계의 현실이다.

 실제로 본지가 3일 10대 그룹의 내년 사업계획 추진 상황을 조사했더니 LG·포스코 정도가 “계획대로 (내년 계획을) 수립 중”이라고 밝혔다. 삼성은 지난해부터 투자계획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세계 시장에서 급격하게 흔들리고 있는 국내 대기업의 입지가 새판을 계획하는 데 발목을 잡고 있다. 삼성전자는 이른바 ‘갤럭시 쇼크’를 겪으면서 영업이익이 6개월 새 반 토막으로 줄었다. 휴대전화·TV·반도체·조선·석유화학 등 국내 6대 주력 산업 가운데 자동차만 빼고 올 상반기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현대·기아차 역시 급격한 엔화 약세로 위기감이 커진 상태다. 현대차는 올 3분기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18% 줄어든 1조6500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이 같은 실적 부진이 ‘단순한 경기 사이클’이 아닌 구조적인 경쟁력 약화로 굳어질 기미가 보인다는 데서 문제가 심각해진다. 석유화학산업을 송두리째 흔들고 있는 셰일가스 개발이 대표적이다. 원유 정제부터 고도 설비화로 이어지는 석유화학제품 제조 과정이 값싼 셰일가스를 활용한 ‘가스화학’으로 바뀔 수 있어서다. 유가 하락 역시 조선업계에는 ‘패닉’이 된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유가 하락으로) 오일 메이저들이 투자를 미루면 조선업계의 성장동력이었던 해양플랜트 수주가 차질을 빚는다”며 “해운 시장도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는 상황에서 또 한 번 직격탄을 맞는 격”이라고 우려했다.

 게다가 재계엔 연말 인사 시즌을 앞두고 조직 축소와 ‘판갈이 인사’ 소문으로 어느 때보다 어수선하다. 이미 현대중공업 임원 200여 명 중 3분의 1이 물러났다. 삼성전자는 정보기술·모바일(IM) 부문 사장단에 메스를 가할 것으로 알려졌다. 올 상반기까지 실적 고공행진을 하면서 삼성전자 IM 부문엔 사장만 7명이 근무해 왔다.

 이런 가운데 ‘오너 공백’은 과감한 투자나 해외 사업 등을 주저하게 만들고 있다. 이재현 회장이 재판을 받고 있는 CJ그룹은 지난해 계획보다 20% 줄어든 2조6000억원을 투자하는 데 그쳤다. CJ 관계자는 “올해도 굴업도 골프장, 동부산 영상테마파크 프로젝트를 포기했다”고 말했다. 배상근 한국경제연구원 부원장은 “지금 우리 경제는 야구로 치자면 한화 이글스에서 류현진이 빠진 격”이라며 “그나마 정부의 확장적 재정 지출, 과감한 규제 개혁이 마중물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상재·김현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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