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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전문기자 칼럼

판교 공영개발 하겠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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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당정 협의에서 중대형 아파트 공급 확대와 재건축 규제 완화가 검토됐다고 하더니 하룻밤 사이 청와대가 그런 뜻이 아니라고 부인하고 나섰다. 한편 한덕수 부총리는 이 같은 논란에 대해 원론적인 이야기만 되풀이했다. 도대체 부동산 정책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감조차 잡기 어렵다.

판교 개발에 대해서도 공영개발에 무게가 실리고 있지만, 어떤 형태가 될지는 오리무중이다. 어차피 땅은 공영개발이었던 만큼 새삼스럽게 공영개발이라 함은 주택 건설까지 주택공사나 토지공사 등 공공부문이 맡는다는 의미다. 주택공사나 토지공사가 직접 아파트를 짓게 되면 건설회사가 남기는 이익을 최소화할 수 있어 분양가를 낮출 수 있고 이에 따라 주변 집값 상승 요인을 억제할 수 있다는 논리다.

이제는 주택분야에서도 '권력이 정부에서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인식을 되새겨야 할 때다. 아무리 정책의 취지가 좋아도 시장의 기능을 거스르는 정책은 성공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경제학적으로 볼 때 수요에 부응하는 공급만이 가격을 안정시킬 수 있다. 정치적으로 볼 때도 국민이 원하는 것을 제공하는 정부가 성공할 수 있는 것이다.

판교 같은 인기지역은 분양가를 낮추면 낮출수록 프리미엄이 많을 수밖에 없고 이를 노리는 투기꾼들이 판을 치게 마련이다. 판교와 같은 대규모 개발과정에서 개발이익의 발생은 필연이며 이를 억제할 방법은 시장경제하에서는 없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불로소득의 억제가 불가능하다면 이의 바람직한 배분 방법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프리미엄 배분 방법의 결정은 정부의 몫이다.

우선 공영개발을 통해 분양가를 낮춘다면 채권입찰제 형태 등으로 프리미엄을 정부가 환수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경우 분양가와 채권을 합하면 거의 시장가격에 근접해 주변 집값 안정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비판이 제기될 것이다. 또 다른 방안으로는 프리미엄이 무주택 서민에게 돌아가도록 만드는 것이다. 즉 판교 전체의 청약자격을 아예 현재 무주택 우선 분양 대상자인 10년 이상 무주택에다 35세 이상 세대주인 사람에게만 국한하는 방안이다. 또 이들에게는 분양받은 뒤 1회에 한해 전매도 가능하도록 해준다.

당첨된 무주택 세대주 가운데 아파트 분양대금을 낼 수 있는 사람은 아파트에 입주할 것이고, 능력이 안 되면 프리미엄을 받고 팔 것이다. 결국 약 2만 가구에 달하는 무주택 서민이 낮은 분양가와 시장가격 차이만큼 이익을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한편 판교라는 좋은 입지를 원하는 구매자들은 프리미엄을 주고 (결과적으로는 시장가격에라도) 집을 살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2만 가구의 주택 공급도 이루어지는 셈이다.

장기적으로 가장 바람직한 방향은 눈앞의 일시적 부작용을 감수하더라도 판교 개발을 시장에 맡겨두는 것이다. 그것이 좋은 질의 주택을 많이 공급할 수 있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굳이 정부가 나서서 공영개발로 낮은 가격에 아파트를 공급하겠다면, 철저히 서민들에게 '판교 로또'의 행운이 돌아가게 하자는 이야기다. 시장기능을 존중하면서 소득의 재분배도 꾀할 수 있으니 말이다.

신혜경 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