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농지개혁(3)|제자·철농 이기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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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농지 개혁법안은 국회에 넘겨지면서 만신창이가 되었다. 정파의 주장이 크게 엇갈리고 지연전술에 걸리는 등 49일의 긴 논쟁에 휘말린다. 정부안에 대한 즉각적 반응에서 지주를 대변하는 쪽은 15할이 너무 가혹하다 했고 반대로 소작인을 두둔하는 축은 너무 후하다고 맞섰다.
각 지방에서 열린 공천회에서도 의견이 분분했다.
소작인측은 대체로 정부안에 찬성하고 봄 안에 농토를 나눠달라고 했다. 그러나 지주측은 보상가격이 너무 낮고, 농지 상한선 2정보로는 아이들 공부도 못시킨다고 아우성쳤다.

<보상가격 늘려>
농림부는 지방공청회에서 나타난 문제점들을 약간 보완해 49년1월24일 기획처에 넘겼다. 기획처는 농지보상 1백50%, 상환 1백20%를 2백% 동률로 하고 보상과 상환기간도 똑같이 10년으로 고쳤다. 이 기획처 수정안은 49년2월4일 국무회의를 통과, 2월5일 국회에 제출했다. 정부수립 후 5개월20일만에 국회에 넘겨진 것이다.
그러나 국회산업위원회는 이 정부안을 그대로 본회의에 올리지 않고 한달 이상 깔아뭉갰다. 농림분과위원회에 이미 제시돼있던 4∼5개의 안과 함께 검토한다는 것이었다. 진보파 의원들이 불만을 터뜨렸다.
정준 의원(김포·무소속)은 『가장 시급한 농지개혁법안이 무슨 연유로 여태껏 나오지 않고 있다는 말인가.
농지개혁을 지연시키려는 음모가 있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지주들이 이 문제를 반대하느라 모든 수작을 벌이고 있다』고 폭로했다.
박기운 의원(청주·무소속)은「헌법의 농지개혁조항이 통과될 때 김일성이 술을 마시고 있다가 술잔을 내던지고 한탄한 일이 있다. 남한에서는 토지개혁을 안하고 저희들만 할 수 있다고 선전했는데 이 조항이 들어감으로써 남한의 농민을 다 대한민국에 빼앗겼다고 한탄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빨리 처리하지 않고 미적거리는가』라고 했다.
말썽이 되는 가운데 국회산업위원회는 농지보상에서 정부원안 2백%를 3백%(3배)로 고치고 농지상한선을 2정보에서 3정보로 바꿨다.
농지개혁에 가장 큰 이해관계가 달린 보상가격과 농지소유 상한선을 지주측에 유리하도록 고친 것이다. 산업위원회는 49년3월10일 이 수정안을 본회의에 올렸다.
당시 산업위원회 위원장은 한민당의 중진 서상일 의원. 그는 모든 지주를 영세농으로 만들 수 없고 토지자본을 산업자본화 할 수 있게 한다는 한민당의 방침에 따라 수정했다고 했지만 그 무렵에 정치분위기는 그런 배경설명을 새겨보려 하지 않았다.
이구수 의원(고성·무소속).
「정부에서 20할 10년불로 하겠다고 한 것을 신성한 우리 산업위원회에서 30할로 한다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이것은 우리 전 민중이 용서할 도리가 없다고 본다.」
서용길 의원(아산·무소속).
『10년 동안 30할이라고 하면 매년 생산고의 3할을 10년 동안 내는 것이다. 도대체 위원회는 농민에게 이런 과중한 부담을 시키는 것이 토지개혁의 근본정신이라고 생각하는가』라고 호통쳤다.
윤재근 의원(강화·무소속)은 『이 농지개혁법은 지주의 토지 처분법이라고 함이 타당하다. 농민을 위한 토지개혁법이 아니고 지주의 편의를 위해 법문화시켰다』고 몰아붙였다.
무소속계열이 공격을 개시하자 서상일 위원장은 『30할로 계산해도 논 값은 평당 72원 가량이다. 이것은 싯가에 비해 절반도 안되는 금액이다. 지주의 재산을 북조선과 같이 몰수한다면 별문제겠지만 지주도 우리의 국민인 이상, 억울한 일을 시킬 필요가 없지 않은가. 만일 지주에게 이 정도의 대가도 지불하지 않으면 북한에서 한 것과 같은 무상몰수밖에 안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조국현 의원(화순·대성회)도 「소작료로 지금 3할3푼을 받고있다. 보상가를 30할이라고 했지만 이걸 한목에 주는 것도 아니고 1년에 3할씩 주어 10년 후에는 땅을 가져간다는 것이니 이 법은 「10년 무상몰수법」이 아닌가』라고 지주를 옹호했다.
당시 산업위원회 소속으로 한민당이었던 이석주 의원(79)의 회고.
『당시의 분위기를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거지를 구제하기 위해 새로 거지를 만들수야 없지 않으냐는 것이었죠. 바꿔 말해 농민을 살리기 위해 지주를 죽일 수 없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한민당 안에서도 모두 지주편을 든 것은 아닙니다. 당시의 분위기는 당명이라고 무조건 따르지는 않았읍니다. 나만해도 농민 총연맹에 소속돼있어 소작인을 두둔했읍니다.』
강진국 농지국장의 증언.
『산업위원회에서 농지보상을 30할(3백%)로 바꾸고 농지상한선을 3정보로 늘린 것은 한민당 쪽의 의사였습니다. 서상일 위원장과 산업위원은 아니지만 김준연·조헌영 의원 등이 나에게 동의를 구하고 그런 방향으로 몰아갔읍니다. 그들은 <농지개혁으로 손해를 보는 측은 지주들이므로 지주에게 상당한 보상을 해 산업자본으로 육성해야 하는데 실은 30할도 넉넉지 않다>고 했읍니다.』
법률명칭에도 불만이 제기됐다. 김수선 의원(울산· 무소속)등 17인은 「농지법」으로 하자는 수정안을, 이석 의원(경주을·대한독촉)은 「농지제한법」으로 하자고 제안했다.

<서상일 등 앞장>
김수선 의원은 『사람이거나 법률이거나 백만가지 일이 항상 외유내강하고 말소리도 점잖고 온유하면서 내용이 착실해야 좋은 결과를 맺는 것이다. 우리가 처음 만드는 이 농지법에다 무슨 칼날 같은 언동을 쓸 필요가 없다』고 했다.
이석 의원은 『우리가 국권을 회복한 것이 혁명에 의한 것이 아니요. 또 독립한지 며칠 안되고 아직 개혁이라는 단계에 이르지도 못했다. 법에 정부가 적당한 보상으로 농지를 매수한다고 했는데 이것이 바로 「제한」이다. 하등「개혁」이 아니다』라고 했다.
그러자 한달 전에 농림장관직을 내놓은 조봉암 의원이 나섰다. 『이 법이 농지법이 될지, 농지 제한법이 될지, 대지주 옹호법이 될지 아직 몰라요. 그러나 농지개혁이 전민족의 요구라고 봐서 이 법안이 기초된 것입니다. 그러니 개혁하자는 것을 전제로 하고 토론하지 않으면 안돼요. 소작제도라는 수천년 내려온 제도를 고치자는 것이에요. 없애버리자는 것이에요. 이것이 개혁이예요. 개혁이란 그렇게 무서운 것도 아니고 어려운 것도 아닙니다.』
표결에 붙인 결과 명칭은 원안대로 농지개혁법으로 낙착됐다.
국회는 「농지개혁」을 추진하기 위해 중앙·시·도·군·읍·면·리에 농지위원회를 둔다는 제4조를 놓고 무려 45개의 수정안이 나왔다. 농지위원을 모두 농민으로 해야 한다는 안, 적어도 반수 이상은 농지를 분배받을 사람으로 해야 한다는 안, 3분의1을 소작인으로 해야한다는 안 등이었다. 여기서 농지개혁을 농민에게 맡기자는 김수선 의원의 주장을 보자.
『농지개혁을 한다고 지주 대신 다른 기관이 들어가 농민을 노예시한다면 이 농지개혁은 그야말로 교각살우격입니다.
공산당이 지주에게서 땅을 빼앗아 농민에게 나누어주지만 전 농민은 공산당의 종님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지주 땅을 사들여 농민에게 나누어주고 국가가 관여하면 농민은 관리의 종님이 되는 것이에요.
국가가 관여하지 않아도 농민은 스스로 토지를 분배할 수 있습니다. 이 법을 실시하자면 2년의 시일과 20억원의 돈이 드는데 이것이 농민들의 세금입니다.』 그러나 농지위원의 민선을 주장한 안은 표결결과 모두 부결됐다.

<예산 심의하자>
국회가 이 조항을 끝내고 사회를 보던 김 야당부의장이 다음 조항으로 넘어가려는 순간 재경위원장인 홍성하 의원(한민당)이 김 부의장에게 다가가 귓속말을 나누었다.
홍 의원은 49년도 예산을 먼저 다루자는 요청이었다. 조한백 의원이 『예산처리가 급박하니 내일부터 3일간 본회의를 쉬고 각 분과위원회에서 예산을 심의하자』는 긴급 동의를 내놨다.
그러자 『농지개혁법 하다가 이게 뭐요』 『안돼요』라는 고함이 터져 나왔지만 표결결과 긴급동의는 가결됐다. 개혁법은 심의지연작전에 걸린 것이다.
앞서 정부는 국회의 농지법 심의가 지연되자 농지개혁에 관한 임시 조치법안을 냈다. 개혁의 준비기간 동안에 지주들이 소작인에게 논밭을 강제로 팔거나 뺏는 것을 방지하는 단2개조의 법률안이었다.
그러나 국회는 이 법안도 부결시켰었다. 여기에 다시 심의지연작전에 걸렸으니 이 법안에 대한 국회의 두꺼운 벽을 실감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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