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장정하라"… 미·일 무역전쟁 가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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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조지·부시」미부통령의 주된 방일(23일부터 3일간)목적은 미일간 문제가 되고 있는 일본의 시장개방과 방위력 증강을 촉구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가 일본에 도착한 23일 동경시내 한복판의 히비야(일비곡)고우원에서는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8천여명의 농민들이 「농산물 수입자유화 반대 궐기대회」를 열고 미국의 시장개방 요구에 대한 대대적인 반대시위를 벌임으로써 그의 일본행차에 찬물을 끼얹었다.
「부시」부통령은 24일 동경외신기자클럽에서 연설을 통해 『미일 양국이 무역문제로 정면충돌을 향해 달리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는 신문들이 있으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고 말하고 「대립」이 아니라 「협력」으로 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라는 그의 심정을 애써 강조했다.
미일무역마찰의 직접 원인은 미국시장에 홍수처럼 밀려드는 일본상품이다.
두 차례의 석유파동을 겪는 동안 「도요따」「닛산」등 일본의 소형승용차는 세계각지에서 미국자동차를 몰아내고 자동차왕국의 지위를 빼앗았을 뿐아니라 미국시장의 20%를 잠식, 「포드」「클라이슬러」등 미자동차회사들의 기초를 뿌리째 흔들어 놓고 있다.
미국의 자동차도시 디트로이트에는 일본승용차에 밀려 직장을 잃은 실업자가 1백만명에 육박하고 있는 실정이다. 자동차뿐 아니라 VTR는 95%, 오토바이는 90%, 반도체는 60%이상을 일본제품이 차지하고 있고 섬유·철강·컬러TV는 이미 일본제품이 판을 친지 오래다.
일본에서 발행되는 경제잡지 「동양경제」(81년12월26일자)의 표현을 빌면 이같은 일본상품의 「위구적」침략에 참다못한 미국이 반격을 시작함으로써 마찰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80년 자동차에서 본격화된 당국간 무역마찰은 81년3월 일본이 일단 자동차 대미수출을 연1백68만대로 자제키로 함으로써 잠시 수습되는 듯 했다.
그러나 작년 미국의 대일무역적자가 80년의 1백21억달러에서 1백80억달러로 더욱 확대됨에 따라 양국의 무역바찰은 미국의 일본시장 전면개방요구로 더욱 확대되고 있다. 미국은 작년 12월 양국간 무역확대회의에서 일본시장의 전면개방을 공식 요구한이래 1월의 「맨스필드」주미대사의 외신기자클럽연설, 2월의 「에사끼」(강기진증) 자민당국제경제대책특별조사회장, 「사꾸라우찌」(양내의웅)외상의 방미, 3월의 무역소위원회, 그리고 이번 「부시」미부통령의 방일등 기회있을 때마다 일본에 대해 시장개방조치를 촉구하고 있다.
일본의 시장개방을 요구하는 미국의 논리는 간단하다. 미일간 무역불균형이 생기고 확대되는 것은 미국이 자유무역주의에 입각, 「원칙개방·예외규제」의 입장을 취하고 있는데 반해 일본은 「원칙규제·예외개방」정책을 취하고 있기 때문인만큼 이같은 규제를 철폐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례를 보면 일본이 수출하는 자동차는 미국땅에 내리자마자 굴러다닐 수 있지만 미국자동차를 일본에 수입하는 경우 각종 까다로운 검사·수속절차에 2개월이 걸리게 돼있으며 10만엔까지의 수수료를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
미국은 일본이 자국내 농업보호를 위해 수입을 규제하는 22개 농산물의 자유화에서 이같은 눈에 보이지 않은 장벽에 이르기까지 전면적인 시장개방을 해야만 자유무역주의의 이익을 나누어 가질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같은 미국의 논리에 대해 일본측도 그나름의 반론을 펴고 있다.
우선 미국경제가 어렵고 실업자가 느는 것은 두차례의 석유파동을 극복하지 못한 때문이지 일본상품탓만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또 일본이 미국에 상품을 팔 수 있는 것은 미국제품보다 경제력이 있기 때문이며 이것은 일본의 책임이 아니라 미국자신의 책임이라고 강조한다. 「에사끼」회장은 무역불균형이 미국의 고금리에도 큰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의 고금리로 엔화가 실세보다 낮게 평가되고 있으며 이 때문에 일본의 수출이 늘고있다는 주장이다. 그는 엔화가 10엔떨어질때마다 일본의 20억달러의 무역흑자를 가져오며 따라서 작년의 1백80억달러는 미국의 고금리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런 형편인만큼 미국의 요구대로 시장을 1백%개방해도 미국에 주는 무역수지 개선효과는 불과 8억∼9억달러에 불과할 뿐이며 (본야 종합연구소부소장의 말) 일본의 농민만 죽이는 결과가 된다고 일본측은 반발하고 있다.
또 미국이 지금처럼 압력을 가중해오는 것은 순수한 경제적 이유보다 오는 11월로 예정된 중간선거를 의식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꼬집고 있다.
이같은 일본의 주장에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미국의 요구를 단순한 숫자상의 논리나 정치적 제스처로 몰아붙이려 한다면 이는 사태를 지나치게 피상적으로 보는 것이다.
미국의 강경한 자세의 배경에는 『내가 낸 세금으로 「공짜안보」를 누리고 그 덕으로 경제적 번영을 이룩하게된 일본이 이제와서 나자신을 직장에서 몰아내고 있다』는 미국민들의 분노가 서려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는 비단 미국뿐 아니라 아주·동남아등 일본의 이기적인 경제제일주의에 희생된 모든 국민들이 갖고있는 공통의 감정이기도 하다. 【동경=신성순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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