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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 작년 국방부와 애기봉 등탑 철거 사전논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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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해병대가 지난달 중순 애기봉 등탑(사진)을 철거하기 전에 국방부 실무책임자와 사전논의를 했다고 복수의 군 소식통들이 2일 말했다. 국방부는 그동안 국정감사 등에서 “언론 보도를 통해 애기봉 등탑 철거를 알았다”(한민구 장관, 10월 27일)는 등 철거가 ‘해병대 사단장의 독단적 결정’이라고 해명해왔다.

 이에 따라 군 내부의 보고체계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군 소식통에 따르면 해병대 2사단과 국방부 국방정책실 산하 북한정책과 실무자들은 지난해 말 수차례 만나 애기봉 등탑 철거 문제를 논의했다. 해병대 관계자는 2일 “김포시가 내년 3월 애기봉 등탑을 철거하는 것으로 계획한 상태였다”며 “수십 년간 대북심리전의 도구로 활용된 만큼 해병대 입장에선 국방부에 사전보고를 하고 이에 대한 유권해석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보고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당시 국방부 북한정책과에선 철거 계획에 반대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그러던 중 지난달 16일 등탑이 철거됐다는 사실이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지고, 논란이 커지자 국방부는 “사전에 알지 못했던 일이며, 해병대 사단장이 독단적으로 결정한 일”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복수의 관계자들에 따르면 애기봉 등탑이 철거되는 동안 국방부의 보고 기능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해병대가 북한정책과에 보고했지만, 이 같은 사실이 계통을 통해 국방부 장관에게 보고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바람에 대북 사안을 관리하는 군비통제차장도 등탑 철거 사실을 언론 보도를 보고서야 뒤늦게 인지했다고 한다.

 보고체계에 허점을 보이긴 해병대도 마찬가지다. 해당 사단장은 철거를 완료한 다음 날 사단장 교대식을 하는 자리에서 해병대사령관에게 등탑을 철거했다고 사후보고 형식으로 전했다. 하지만 시점이 지난 데다 심각한 사안이 아니라고 판단해 해병대사령관도 이 사실을 국방부 장관에게까지 보고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해병대 측은 “사단장이 지난해 국방부(북한정책과)에 몇 차례 보고가 된 만큼 따로 승인받을 필요는 없다고 판단해 사후 처리만 보고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뒤늦게 이 같은 사실을 밝히게 된 데 대해 해병대 측 관계자는 “군이 서로 책임을 떠넘긴다는 논란만 키울 것 같아 굳이 설명하지 않았지만 현재 쏟아지는 비난을 해병대 혼자서만 억울하게 뒤집어쓰는 면이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해병대 측의 이 같은 주장에 대해 국방부 북한정책과 측은 “애기봉 철거와 관련한 논의가 없었다”고 부인했다.

 한편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이하 한기총)는 지난달 31일 성명을 내고 등탑 건립추진위원회를 설립해 애기봉에 다시 등탑을 세우겠다고 밝혔다. 한기총은 성명에서 “그동안 침묵을 지켰던 이유는 인천 아시안게임 당시 북한 실세들의 방남 등 남북 간 대화 분위기 속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뜻에 의해 등탑이 철거된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라며 “대통령이 관련자들을 추궁했다는 사실을 접해 대신할 등탑을 세우기로 했다”고 밝혔다. 해병대 측은 “아직 한기총과 정식으로 논의한 일은 없다”고 설명했다.

 인터넷 등에서 철거된 애기봉 철탑을 해병대 측이 고물상에 고철로 판매했다는 의혹이 나도는 것과 관련해 국방부는 “사실무근이며 애기봉 등탑이 갖는 역사성 등을 고려해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해명했다. 해병대 측도 “철거 후 보관하고 있다”고 밝혔다.

유성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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