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과뒤 겉과속…가까이서 멀리서 홍사중<문학평론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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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지난 가을에 근 한달가량 미국의 여러도시를 다녀온 적이 있다. 한달동안 이라지만 거의 전부를 도서관안에서 보냈다. 그래도 여러가지로 흥미로운 관찰을 할수가 있었다.
보스턴시립도서관에서 옛신문의 마이크로필름을 한참 보고 있는데 갑자기 사이렌소리가 났다. 불이라도 났는가 했더니 누군가 폭탄을 관내에 장치했다는 위협전화가 걸려왔다는 것
이다. 열람자들을 내보내는 직원들은 그러나 서두르는것 같지가 않았다. 도서관 밖으로 몰려나가는 사람들에게서도 별로 놀라운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그런 일을 심심챦게 겪어온 모양이었다.
음산한 날씨탓이었던지 뉴욕 시립도서관은 마냥 누추하게만 보였다. 시설이나 서비스도 엉망이었다. 그리고 추위를 피해 들어온 거지들도 많았다.
미국이 자랑하는 국회도서관의 시설들도 낡아서 제구실을 다하지 못하고 있었다. 화장실에 들어가 보니 벽면은 온통 「레이건」대롱령을 욕하는 낙서들로 가득차 있었다 (어쩌면 이것은 시카고 도서관이었는지도 모F,S다).
호텔에 돌아와 꾸물거리다 저녁이라도 먹으려 막나가려는데 바로 호텔밖에서 요란한 총성이 났다. 백악관에서 엎드러지면 코가 닿을만한 곳에 있는 호텔이었다. 시간도 10시가 못된때였다.
겁이나서 그냥 비싼 호텔음식을 사먹기로 했는데 백인웨이터가 농담삼아 말하기를 해만 떨어지면 워싱턴 시내에는 백인으론 대통령 한명밖에 남아있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시카고 도서관에서는 또 몇년전인가 강도미수로 잡혔다 풀려나온 흑인이 당시의 신문에 나온 자기 이름을 가리키며 걸프렌드에게 자랑하는 자리를 목격해야했다.
이렇게 여러 도시의 도서콴관을 돌아다니는 동안 밤마다 들은 텔리비전의 뉴스 시간에서는 날로 늘어만가는 실업자수며, 불경기지수며, 범죄율을 말해주고 있었다.
뉴욕에서 잡화상을 하고있는 한 한국인 친구는 지난한달동안에 두번이나 강도에게 털렸다고 말해주었다. 그런가하면 로스앤젤레스의 한국인 마을에서는 강도가 무서워 아예 대낮에도 쇠창살로 문을닫은채 장사를 하는 상점이 많았다.
이렇게만 본다면 미국사회는 속속들이 병들어 있다. 당장에라도 망할듯이 보인다. 그러나 그렇지만도 아닌게 미국이다.
보스턴 도서관에서는 취미로 자기고향의 지방사를 조사중이라는 가정부인을 만났다. 로스앤젤레스에서는 또 마이크로필름의 복사가 잘못되니까 그 요금을 받지않겠다는 친절한 직원을 만났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우연히 같이 도서관을 나오게 된 어느 미국인에게 길을 물었다. 그는 마치 어린아이라도 가르치듯 길을 알려주었지만 워낙 길눈이 어두운 내가 그대로 따라갈 수가 있을것 같지가 않았다. 차라리 택시를 타는 편이 좋겠다고 말하자 그는 그처럼 편리하고 싼 전차며 버스를 놔두고 왜 공연한 낭빈를 하려느냐고 점잖게 타이르는 것이었다.
이런 것을 보면 또 미국은 좀처럼해서 망할 나라는 아니라는 생각을 갖게된다.
어느 일에나 앞과 뒤의 두개의 얼굴이 있다. 이에따라 어느것을 볼때에나 두가지 단점이 있게 마련이다. 그 어느 한쪽에 치우쳐도 진실과는 멀어진다. 상반되는 두개의 얼굴, 또는 두개의 관점 사이에서 판단의 균현을 잃지 않으려면 뭣보다도 양쪽 얘기를 다 들어보고 양쪽 얼굴을 다 뜯어보는 양식이 필요하다.
가령 요새 텔레비전에는 매주에 『영11』이니 『젊음의 행진』이니 하는 대학생들의 프로가 있다.
거기에서는 어설픈 원어의 포프노래가 나오고 얄팍한 재치뿐인 침담이 나오고, 여기 광란의 몸부림이 곁들여 나온다. 이런게 방송국쪽에서 내세우듯이「젊은 지성」이니 「낭만」 의 참모습은 아닐 것이다. 이런게 또 오늘을 사는 한국대학생의 참다운 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위해서는 밤늦도록 도서관에 앉아있는 대학생이며, 책 월부판매원 노릇을 하는 고학생들의 모습을 아울러봐야한다.
그러나 가장 가려내기 어려운 것은 속과 겉이 다른 경우다.
벌써 여러해된 얘기지만 어느 전직 고관이 호화로운 자기집을 남에게 전세주고 아파트로 이사왔다. 청렴한 체해야 또다시 감투를 쓸 수 있겠다는 속셈에서였다. 호화주택이 된서리를맞던 때였다. 당시 그를 본뜬 사람이한둘은아니었다.
세월이 바뀌자 그분들은 하나둘씩 아파트주변에서 슬며시 빠져나갔다. 그동안에 그분들은 아파트값만 올려놓았던 것이다.
최근에 호화주택안살기, 외제차안타기 운동이 정계의 일각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양이다. 그 취지야 나무랄 것이 없다. 그러나 기왕에 가지고 있는 주택이 호화롭다해서 새집을 마련하라는것은 좀 무리다. 기왕에 사들여온 외제차를 차고 속에서 썩혀두라는 것도 상당한 낭비다.
언제나 형식이 중요한게 아니라 마음가짐이다. 그래서 의식개혁운동도 일고있을 것이다. 의식이 앞서면 그 다음에는 절로 생활화될 것이다. 제 집을 놔두고 남의 집에 세들거나 아파트로 이사간다고 청렴을 실천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의식이 바뀌어지는 것도 물론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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