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재 털어 운동선수들 뒷바라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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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39세의 나이에 기업과 문화계 그리고 사회사업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활동을 해왔던 원진그룹 대표 김상기씨의 죽음은 여러 가지 면에서 많은 충격을 주고있다.
김씨는 현직 조흥은행 명동지점 차장으로 있으면서 5년전부터 원진무역·원진강건·원진바우·원진조선 등 그룹의 회장직에 앉아 특유의 사업솜씨를 발휘했고 그룹 산하에 원진프로모션(대표 김규철)과 3개의 체육관을 두고 전WBA챔피언, 김봉식 선수 등 유명권투선수들도 배출했다.
또 지난해 대한체조협회 회장을 맡아 88올림픽에서는 불모지인 체조종목에서도 꼭 금메달을 따내겠다며 2억여원의 사재를 털어넣기도 했다.
평소 『사회에서 번 돈은 사회에 환원해야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온 김씨는 지난 2월1일 원진그룹 회장직에서 물러나면서 자기 소유 주식을 원진체육관과 박애원에 넘겨주었다.
또 연극을 좋아해 극단 민예극장의 숨은 스폰서였고 김씨가 75년에 설립한 박애원에 대한 애착은 그가 자살하기 전 3백여명의 무의무탁 정신이상자가 수용돼있는 박애원에 들렀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다.
김씨는 63년 조흥은행에 입행, 바로 군에 입대했다.
김씨는 월남전에 참전, PX병으로 있으면서 돈을 모아 무역회사를 차리는 밑천이 된 것으로 친지들은 전했다.
강릉상고와 건대를 나온 김씨는 개인사업에 손을 댄 뒤에도 줄곧 조흥은행에 근무하길 고집했는데 최근 아동복메이커인 원진바우가 문을 닫는 등 경영난을 겪게됐다.
81년 원진조선(동해시)인수 등 무리한 사업확장으로 짐을 1억원의 은행빚 담보로 잡히는 등 이때부터 불행이 싹텄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죽기 며칠 전에 친지들을 만나 『내가 죽거든 「저 높은 곳을 향하여」라는 찬송가를 불러달라』며 부탁해 자살을 두려워한 친척들이 김씨를 따라다니며 감시해왔다. 김씨는 몹시 빈곤한 가정에 태어나 「빈손으로 왔던 내가 빈손으로 가고싶다』며 소유주식을 모두 박애원과 스포츠육성에 쓰도록 처남신씨에게 맡기기도 했다.
김씨의 사업실패는 그의 사업체를 맡긴 전문경영인이 돈을 빼돌리는 등 부실 운영한 때문이라고 김씨가 늘 불평해 왔다는 것.
김씨의 사업은 70년대 말 불경기가 닥치자 78년에 설립한 아동복제조업체인 원진바우가 결국 경영난으로 문을 닫고 이때부터 계열회사들 모두가 극심한 적자경영으로 도산 위기에 이르자 김씨는 싯가 1억원 상당의 연희동 자택(대지80평·건평50평)을 은행부채로 잡았다.
김씨의 유족으로는 전 조흥은행 탁구선수인 부인 신문자씨(37)와 1남2녀가 있다.<이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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