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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참에 소선거구제 … 중대선거구제로 바꾸는 논의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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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헌재가 선거구별 인구 편차를 현행 3대 1에서 2대 1로 바꾸라고 결정한 건 ‘게임의 룰’을 뒤흔드는 사안이다. 영호남 의석을 줄이고 수도권 의석은 늘려 정치권의 고질병인 지역주의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19대 국회에서 수도권 의석은 112석으로 전체 지역구(246석)의 45.5%다. 만약 헌재가 지적한 인구 상한초과 선거구를 모두 분할하고, 인구 하한미달 선거구를 전부 통합한다면 수도권 의석은 134석으로 증가해 전체 지역구(258석)의 51.9%를 차지하게 된다. 수도권의 의석이 국회의 과반을 넘어서는 건 명실상부하게 정치의 중심이 수도권으로 이동한다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 유권자들의 1인당 투표가치가 똑같은 대통령 선거에선 인구 규모에 따라 수도권이 최대 승부처가 된 지 오래다. 하지만 지역마다 1인당 투표 가치가 다른 국회의원 선거에선 도시보다 농촌지역 유권자들이 후한 대접을 받아왔다. 가령 인구가 1012만 명인 서울은 의석이 46석인데 인구가 서울의 절반 수준(525만 명)인 호남 의석은 30석이나 된다.

 명지대 김형준(정치학) 교수는 “1960년대 여당이 농촌에서 우세하고 야당은 도시에서 이긴다는 여촌야도(與村野都) 현상이 있었기 때문에 여당이 정략적으로 농촌에 많은 의석이 가도록 인구편차를 늘린 게 지금까지 이어져왔다”며 “이번 헌재 결정은 지역대표성뿐 아니라 표의 등가성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취지”라고 말했다.

 수도권 의석이 늘어나게 되면 여야의 선거전략·공약개발 등도 수도권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다. 중앙대 손병권(정치학) 교수는 “수도권은 부동층, 중도성향 유권자가 많은 편이라 정당이 너무 이념적 색깔을 강하게 내세우면 당선이 힘들다”며 “앞으로 여야가 중도파의 표심을 얻기 위해 더욱 노력을 할 수밖에 없어 정당의 중도 수렴 현상이 벌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당연히 반발이 터져나왔다. 새누리당의 한 핵심당직자는 “이건 지방은 다 죽으란 얘기다. 헌재가 법리적 해석에만 치우쳐 소외받는 지방의 현실을 무시했다”고 비판했다.

 당 차원에서 헌법재판소발(發) 정치개혁 태풍에 대응하는 모습은 달랐다. 새누리당은 “신중해야 한다”(박대출 대변인)고 했다. 반면 문희상 비대위원장이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 “개헌”을 주장한 새정치민주연합은 달랐다. 김성수 대변인은 “ 대대적인 선거구 개편이 불가피해졌다”며 “국회의원 선거제도 자체에 대한 근본적 재검토가 필요해졌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국회 정치개혁특위에서 “중대선거구제, 권역별 비례대표제, 석패율제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논의하자”고 했다. 새정치연합 원혜영 정치혁신실천위원장도 “소선거구제 유지, 선거제도 자체 변경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자는 입장을 정했다”며 “도시는 중대선거구제를, 농촌과 도농복합형에는 소선거구제를 적용하는 투트랙 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헌재 결정이 어쩌면 87년 이후 30년 가까이 유지돼온 대한민국 선거제도에 변화를 몰고올 수도 있는 분위기다. 새누리당 원유철 의원은 “지역구 한두 개 줄이는 것도 쉽지 않은데 수십 개를 조정하는 게 가능하겠나. 이번 기회에 소선거구제를 중대선거구제로 바꾸자는 논의가 본격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정하·이지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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