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美, 중동질서 새판짜기 본격시동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1면

미국이 이라크 전후 중동질서 재편에 착수했다. 지난달 29일 사우디아라비아에 주둔 중인 미군을 철수하기로 한 데 이어 30일엔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분쟁 해결을 위한 '단계적 해결방안(road map)'을 내놓았다.

◇미군 사우디 철수=사우디를 방문한 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과 술탄 이븐 압둘 아지즈 사우디 국방장관은 리야드에서 가진 공동기자회견에서 "올 여름까지 사우디 주둔 미 공군 장비와 병력의 철수를 완료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 결정으로 미국은 합동공군작전센터(CAOP), 1백여대의 항공기, 약 1만명의 병력을 사우디의 프린스 술탄 공군기지에서 카타르의 알우데이드 공군기지로 이동시킬 계획이다.

양국은 철수 결정이 "양국의 우호관계에 입각하고 미국의 걸프지역 병력 감축 계획에 따른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9.11 테러 이후 양국 간에는 긴장관계가 형성돼 왔다.

미국은 사우디가 오사마 빈 라덴을 포함한 이슬람 과격분자를 지원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라크 전쟁을 둘러싸고 양국의 긴장은 더욱 날카로워졌다. 미군의 사우디 주둔은 국가적.종교적 자존심에 대한 모욕이라는 여론에 밀려 사우디 정부는 미국의 이라크 전쟁 수행을 공개적으로 비난하고 군사적 협조를 축소했다.

전쟁의 승리로 이라크로부터 석유공급선을 추가 확보한 미국에 사우디의 정치.경제적 중요도는 줄어들었다. "양국은 여전히 동맹국 관계를 유지하겠지만 관계의 친밀도는 과거에 비해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영국의 BBC 방송은 분석했다.

이라크에 대규모 병력을 주둔시킬 필요가 있는 미국은 미군의 사우디 철수를 신호탄으로 전후 중동질서 재편을 개시한 것이다.

◇중동평화 '로드맵' 제시=미국은 30일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총리와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신임 총리에게 새로운 중동평화안을 건넸다.

이는 이라크 전후를 대비해 미국.러시아.유엔.유럽연합 4자가 공동으로 만든 것이다. 주목을 끌고 있는 평화안이 제시됨에 따라 양국은 곧 미국의 중재로 평화협상을 벌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AFP 통신은 한 외교소식통을 인용, "평화안은 31개월간에 걸친 이.팔 분쟁을 종식시키고 3년 내에 팔레스타인 독립국가를 세우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3단계 시간표로 구성된 이 로드맵은 오는 2005년 최종 타결에 앞서 올해 안에 잠정적인 팔레스타인국가 창설을 요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로드맵은 교착상태에 빠진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건설의 '시간표'를 제시했고, 이라크 전쟁 이전 미국이 제시한 '중동평화 실현 약속'을 실행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이 로드맵이 55년 이상 지속된 중동분쟁을 종식시킬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로드맵은 민감한 사항들에 대한 논의를 모두 내년 이후로 미뤄놓고 있다.

팔레스타인 독립국가의 성격도 '주권적 속성을 가진 국가'로만 규정해 논란이 예상된다.

이스라엘은 무력을 갖지 않는 팔레스타인 국가 창설을 주장하고 있고, 팔레스타인의 무장단체들은 압바스 신임 총리의 무장해제 요구를 거부한 상태여서 양측의 합의 도출에 난항이 예상된다.

서정민 중동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