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아직은 괜찮아" 재계 "비상 대책 절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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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가 대책을 둘러싸고 정부와 경제계의 시각이 엇갈리고 있다.

정부는 승용차 10부제 등 강제적인 에너지 소비 억제책을 시행할 상황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정부가 사태를 너무 안이하게 보고 있다며 비상 대책을 주문하고 나섰다. 정부는 30일 이해찬 국무총리 주재의 '국가에너지절약추진위원회'에서 현재의 석유시장을 '주의' 단계에서 '경계' 단계로 넘어가는 중간으로 평가했다. 이는 정부가 국제 유가와 수급 상황 등 18가지 지표를 토대로 만든 '석유 조기경보지수'에 따른 것으로, 강제조치는 경계단계에 진입했을 때 시행된다. 전경련도 이날 자원대책위원회를 열고 정부에 '서머타임제' 검토 등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 정부의 대책은=국제 유가는 6월 평균 50.8달러(두바이유 기준)로 지난해 8월보다 24% 올랐다.

그러나 같은 기간 원화 환율이 14.5% 떨어졌다. 원화 가치가 그만큼 상승한 것이다. 이 때문에 원화 기준으로 국내 휘발유 가격은 같은 기간 거의 오르지 않았다.

최근 국제 유가가 배럴당 50달러대로 치솟아도 국내 경제에 미치는 충격이 상당 부분 완충됐다는 얘기다. 국제 유가의 오름세로 보면 심상치 않은 상황이지만 아직 원유를 확보하는 데는 지장이 없는 만큼 경계단계까지 간 것은 아니라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정부가 이날 회의에서 찜질방 등 에너지 다소비 업소의 심야영업 제한 등 강제 소비억제책을 검토했으나 막판에 뺀 것도 이 때문이다.

국내 에너지 소비량의 50.8%가 산업용인 반면 가정.상업용은 12.1%에 불과해 심야영업 제한 등 소비억제책의 약효가 신통치 않을 것이란 점도 정부의 고민이다.

눈에 띄는 대책은 현재 106일분인 정부 비축유를 135일분까지 늘리기로 한 정도다. 나머지는 신재생에너지와 해외 유전 등의 개발을 서두르고 에너지 자원사업의 투자 재원을 확충하겠다는 장기 대책이 대부분이다.

시나리오별 비상 대책과 관련, 이희범 산업자원부 장관은 "경계단계부터는 부분적인 강제조치가 시행되겠지만 어떤 조치부터 취할지는 상황을 봐가며 당정 협의와 국무회의를 거쳐 결정키로 했다"고 밝혔다.

◆ 답답한 경제계=전경련 초대 자원대책위원장으로 뽑힌 신헌철 SK사장은 회의 후 "과거 정부가 유가 35달러를 상정한 비상 계획을 마련하겠다고 했지만 50달러를 넘어선 지금까지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었다"고 전했다. 신 사장은 "정부가 유가 70달러(서부 텍사스유 기준) 상황의 비상 계획을 짜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고 강조했다.

중국.인도의 에너지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데다 이란에 보수강경파 대통령이 집권해 불안 심리가 높아지고, 여기에 국제 투기자본까지 가세해 당분간 고유가가 지속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에 따라 심야 전기를 활용하고, 사무실 냉방비를 줄일 수 있는 서머타임제 도입 등 비상 대책을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경민.권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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