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역모, 조직적 공세 나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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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종결은) 쇼와(昭和) 천황의 용기로 소멸 직전의 나라를 존속시킨 인간 드라마다.'전쟁을 끝내는 일의 어려움'에 대해 확실히 설명하고 있는 것은 후소샤(扶桑社) 교과서 밖에 없다."

일제 침략을 미화.왜곡한 후소샤 역사교과서를 만든 우익단체 '새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이 최근 회원들에게 보낸 지침에 나오는 표현이다. 새역모가 후소샤 교과서의 채택률을 높이기 위해 회원들을 동원, 적극 공세에 나섰다. 지난달 17일부터 2~3주 일정으로 전국 810곳에서 교과서 비교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새역모는 회원들에게 빠짐없이 참석한 뒤 교육위원회의 앙케트 조사에 적극 응하라고 독려하면서 앙케트 모범답안을 제시했다. 전시회장에서 이뤄지는 앙케트는 각 지역 교육위원회의 교과서 채택 절차 가운데 일반인들이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다. 앙케트 공세를 통해 교과서 선택 결정권을 가진 교육위원들을 후소샤 지지로 끌어들이자는 전략이다.

새역모 모범답안의 특징은 논란이 되는 근.현대사 부분보다는 일본 고대사에 집중돼 있다. 특히 "'전쟁(2차 대전을 말함)에 관한 기술이 상세한 점이 좋다'라고는 절대 쓰지 말라"고 권고했다. 새역모 회원들의 신념에 어긋나는 지침이다. 새역모는 이에 대해 "교육위원들 중에는 (2차 대전을 자세히 소개한 것을)'전쟁 찬미'로 단정 짓는 사람들이 있다"고 설명했다. 채택률을 높이기 위해 고도의 전략을 쓰는 것이다. 새역모는 대신 "전쟁 이외의 시대 기술에서 단연 뛰어나다는 점을 강조해 달라"며 "후소샤 교과서를 고르는 이유로 에도(江戶.도쿄의 옛지명) 문화의 소개에 힘을 기울였다는 점을 적어 내면 특히 도쿄 23개 구의 교육위원들에게는 설득력이 있을 것"이라고 충고했다. 또 다른 모범답안 사례로는 "아사히 신문이 자주 비난하기에 도대체 어떤 교과서인지 와서 봤더니 오히려 대단히 뛰어난 교과서가 아니냐, 반드시 채택해야 한다"란 내용도 있다. 현재 가장 점유율이 높은 도쿄서적 교과서에 대해선 "일본 문화의 소개에 대한 내용이 빈약하다"라고 쓰고, 제국서원 교과서에 대해서는 "일본 역사에 대한 인상을 나쁘게 유도한다"라고 쓰자는 등 경쟁사의 교과서를 폄하하는 앙케트 예문도 제시했다. 새역모는 "2001년 채택 싸움에서 후소샤 반대 진영은 교육위원들에게 팩스.편지 공세를 펼쳤다"며 "도쿄의 경우 구별로 최소 100통의 앙케트를 제출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한편 새역모 교과서의 채택률을 낮추려는 일본 시민단체들에게는 비상이 걸렸다. 전국 각지에서 "대단히 위험한 상황"이란 정보가 속속 올라오고 있어서다. 니가타(新潟)시 의회는 교육위원회에 대해 북한의 일본인 납치사건을 가장 상세히 기술한 교과서를 채택하라는 청원을 의결했다고 산케이 신문이 30일 보도했다. 새역모 교과서를 채택하라는 뜻이다.

그동안 각 지역에서 새역모 교과서 채택 저지 여론을 확산시켜 온 시민단체들은 7월이 승부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교과서 채택 결과는 8월 말에 최종 발표되지만 일부 지역은 7월에 결정하기 때문이다. 시민단체들은 경계대상 지자체의 교육위원회 위원들에게 대대적인 청원활동을 벌이고 있다. 또 교육위원회 회의에 많은 시민이 참여해 간접적인 압력을 넣는 한편 가두 서명운동도 벌이고 있다. 또 여론환기를 위해 9일자 신문에 광고를 내 새역모 교과서의 부당성을 홍보할 방침이다. 당초 4년 전과 마찬가지로 전면광고를 예정했으나 1200만 엔의 찬조금을 얻지 못해 7단 광고(600만엔)로 줄였다. 민단 청년회도 시민단체들과 연계해 모금운동을 추진하고 있다.

도쿄=예영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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