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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깔혁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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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색깔혁명이 유행이다. 그 서막을 연 것은 2003년 그루지야의 '장미 혁명'이다. 부정 선거가 문제였다. 시민들은 장미 한 송이씩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장미는 평화를 상징한다고 생각했다. 시위대가 건네는 붉은 장미에 진압군은 총부리를 거뒀다. 2004년 우크라이나에선 '오렌지 혁명'이 일었다. 여당이 대선 개표를 조작했다. 시위대는 변화의 상징으로 여긴 오렌지색 옷을 입고 행진했다. 재투표를 이끌어냈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지난 1월의 이라크 총선을 '퍼플 혁명'이라고 불렀다. 투표할 때 손 끝에 묻는 진보라색 잉크에 착안했다. 2월 레바논을 강타한 녹색의 '백향목 혁명'은 친(親)시리아 정권을 퇴진시켰다. 3월 키르기스스탄에선 총선 부정이 초래한 '레몬 혁명'이 터졌다. 반정부 단체 켈켈은 시위 현장으로 노란색 레몬을 날랐고 독재자 아카예프 대통령은 망명했다.

색깔혁명이 항상 성공하는 건 아니다. 일주일 전 이란 대선에선 '핑크 혁명'이란 말이 나왔다. 이슬람 원리주의에 반대하는 여성들이 화사한 분홍색 옷을 입은 데서 유래했다. 그러나 강경파의 승리로 핑크 혁명은 실패했다.

색깔혁명의 유행은 시각 시대를 반영한다. 강렬하고 통일된 색감이 연대의식 고취에 효과 만점이라고 한다. 배후론 '이미지 메이킹'에 능한 미국이 지목된다. 미국 주도의 세계 재편 전략이라는 이야기다. 그루지야.우크라이나 등이 반러.친미 성향의 '정치 공동체'를 추진하는 게 그런 맥락으로 풀이된다.

그래서인가. 중국에선 전샤오잉(甄小英) 중국사회주의학원 부원장이 "색깔혁명을 조심해야 한다"고 경고한 게 화제다. 서방이 중국에 다당제를 도입시켜 반대파를 심고 이들을 통해 색깔혁명을 시도하려 한다는 주장이다.

중국에 어울릴 색깔은 무엇일까. 사실 중국은 색깔혁명의 원조(元祖)가 아니던가. '황건적의 난'에 이어 '홍건적의 난'이 있었고 중국 공산주의 혁명 자체가 '붉은 혁명'이었으니 말이다. 군대는 홍군(紅軍), 해커도 훙커(紅客)로 부른다. 그런 중국에서 '부귀.영화'를 뜻한다는 홍색의 대체색을 찾기가 쉬울까. 뉴욕 타임스는 '혁명을 하려면 색깔부터 잘 고르라'고 했는데. 마침 오늘은 중국 공산당 창당 84주년 기념일이다.

유상철 국제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