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화합하다 보니 이런 일도 … 노조위원장 부인이 선박 명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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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중공업 노조위원장의 부인 배덕남(한복 입은 여성)씨가 30일 독일 오펜사가 주문한 선박을 명명한 뒤 박수를 치고 있다.[연합]

30일 오전 11시 울산시 동구 전하동 현대중공업 선박건조장. 이날 독일의 선박회사인 오펜사가 주문한 5040TEU(1TEU는 20피트짜리 컨테이너)급 대형 컨테이너선 2척에 대한 명명식(命名式)이 열렸다.

행사에 참석한 이 회사 탁학수 노조위원장의 부인 배덕남(45)씨가 이 가운데 1척에 '산타 필리파'(Santa Philippa)라는 이름을 붙였다.

회사 측은 "노조위원장 부인이 대형 선박의 명명식 날 '스폰서'가 되기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일"이라고 밝혔다. 산타 필리파는 이탈리아 여성의 이름에서 따왔다.

새로 만든 배에 이름을 지어주는 사람을 지칭하는 스폰서는 명명식 당일 최고의 주인공으로 배를 주문한 선주사가 지정한다. 대개 선주사 사장이나 선주사의 거래은행 고위층 부인이 스폰서로 지정되며 대통령 부인이 선정되는 경우도 많다.

배씨가 스폰서로 지명받은 사연은 이렇다. 오펜사는 지난달 23일부터 1주일간 2003년 1월 30일 주문했던 2대의 선박에 대한 성능시험을 해본 결과 예상 밖으로 하자가 거의 발생하지 않은 고품질인 데다 납기일을 단 하루의 오차도 없이 지킨 데에 감동했다.

오펜사는 이에 대한 보답으로 2척 중 1척에 대한 스폰서 지명권을 현대중공업에 넘겨줬다. 또 7만 달러(약 7000만원)를 현대중공업 사원복지기금으로 기부했다.

이에 회사 측은 10년째 무분규 등으로 오펜사로부터 찬사를 받는 데 밑바탕이 돼 준 노조에 감사하는 뜻으로 배씨를 스폰서로 지정했다.

현대중공업은 올해 초 탁 위원장이 고객사인 미국의 엑손 모빌사에 배 주문에 대한 감사편지를 보냈으며 엑손 모빌사로부터 100억원의 보너스를 받는 등 노사화합을 통한 이례적인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배씨는 이날 명명서에 배 이름을 적어 넣은 뒤 "개인적인 기쁨이자 노사의 영광"이라며 "회사와 노조가 앞으로도 서로 동고동락하며 함께 영원히 발전해 나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날 명명식을 한 산타 필리파호와 산타 플라시다호 2척의 컨테이너선은 길이 294m, 높이 22.1m, 폭 32.2m로 20피트짜리 컨테이너 5040개를 싣고 평균시속 46km로 운항하게 된다.

울산=이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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