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가 있는 이야기 마을] 반가운 장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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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업을 하시던 아버지가 부도를 맞으면서 우리 가족의 시련은 시작됐다. 다섯 명의 단칸방 동거가 시작된 것이다.

겨울에는 그나마 서로 체온으로 스며드는 냉기를 막을 수 있었지만 여름이 문제였다. 모로 누워도 맞닿는 몸의 열기로 불면의 밤이 계속됐다. 잠 못 들고 낑낑거리는 자식들이 안타까우셨던지 아버지가 묘안을 내셨다. 옥상에 올라가 자기로 한 것이다.

옥상에는 조금만 세게 밟아도 무너져 내릴 것 같은 녹슨 사다리가 하나 있을 뿐이었다. 행여 집 주인이 깰세라 조용히 옥상에 올라 잠자리를 편다. 잠자리라고 해봤자 요 하나와 그 밑에 까는 비닐이 전부였다.

시원한 바람에 몸을 맡기고 잠이 들 만하면 어머니가 흔들어 깨우셨다. 집 주인이 일어나기 전에 내려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무거운 눈꺼풀을 억지로 들어올리며 아슬아슬 사다리를 내려와야 했다. 화장실에 가는 일이 없도록 옥상에 올라가기 전에는 물도 마시지 말아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막 잠이 들어 아버지의 코 고는 소리가 귓가에서 떠날 무렵 어머니의 기상 나팔이 울려퍼졌다.

"비다. 얼른 내려가자."

그 후로 얼마 동안은 행복한 나날이 계속되었다. 장마가 시작된 것이다. 장마 덕분에 우리 가족은 한방에서 잠들 수 있었다. 시원하게 쏟아지는 빗줄기가 더위를 조금이나마 가져갔기 때문이었다. 장마가 끝나고 나면 더욱더 잔인한 무더위가 몰려왔다. 그래서 그해 여름부터는 항상 장마가 언제 오나 기다려지곤 했다. 방에서 새벽에 깨지 않고 늦게까지 잘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제는 어느새 한 아이의 엄마가 될 만큼 세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때 일들이 선명하다. 도둑발로 옥상에 올라가던 일, 새벽에 사다리를 내려오다 떨어질 뻔한 일… 그때는 너무 힘든 순간들이었지만 지금은 재밌는 추억으로 남았다. 해마다 장마로 애꿎은 피해를 보는 사람들이 생겨나지만 우리 가족에게 장마는 더운 여름을 한 방에서 보낼 수 있게 해준 '행복의 전령'이었다.

김길자(31.주부.전북 전주시 효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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