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대학」나오면 「별종」으로 변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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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문부식등 젊은 대학생들의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은 지금까지 학생들의 소요를 반정부 활동으로만 파악해온 일반에게 큰 충격을 주고있다.
이번, 사건에서 보듯, 최근 일부 대학생들의 행동양상은 파괴적 폭력으로 치닫고 있으며, 대학가에 뿌려지는 그들의 유인물중에는 단순한 정부비판 차원을 넘어 체제전반을 부정하고 사회혁명을 주장하는 내용이 적지않다.
체제전복 기도에까지 이른 이같은 학생들의 움직임뒤에는 「지하대학」으로 불리는 음성서클이 있고, 그들 행동의 원동력은 소위 「의식화운동」에서 나오고있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이들 학생들은 대학에 입학하면서 30명내외를 단위로하는 지하서클에 가담, 해방신학·종속이론, 심지어는 공산주의서적까지를 윤독(윤독), 토론회등 모임은로 MT(Membership Training)를 갖고 행동에 나설 수 있는 정신무장을 하게된다는 것.
이들이 읽는 도서는 「E·H·카」의 『역사란 무엇인가』, 「H·마르쿠제」의 『위대한 거부』등 ▲현실비판을 위한 기본도서 ▲문제제기도서 ▲문제원인분석도서 ▲문제해결도서등 4개분야에 각30여권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대체로 대학의 정식과목에서는 다루지 않으면서 「젊은 지성인」에게 호기심을 끌수 있는 일반지식으로부터 시작, 「없는자」가 억눌려야하는 문제의 소재를 나름대로 밝히고 문제의 원인을 분석, 해결하려는 논리를 정립한다.
특히 문제해결은 자유와 평등의 해방사상·민족주의·민주주의와 사회주의·교육개혁등을 내걸면서 결국은 실천을 통한 사회운동과 폭력혁명으로 치닫게 된다는 것이 대학교수들의 관찰이다.
이들이 폭력혁명도 서슴지않는 행동에 나서기까지는 1∼2년의 의식화운동으로 불리는 세뇌교육의 과정이 있다는것.
당초 반국가적 행위가 아닌 반정부·장기집권 반대운동으로 시작된 의식화운동은 그 역사가 73년 민청학련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73년3월12일부터 74년3월까지 서올·대구·부산에서 있었던 소위 「스터디그룹」 사건이다. 그외에도 의식화운동에 바탕을 둔 학원소요사태는 74년11월11일 부산대의 교내시위를 비롯, 78년까지 매년 학원소요사태를 거의 추도해 온 주동 맴버들의 정신적 지주였다.
그러나 75년초 학도호국단이 결성되면서 민청학련사건과 관련, 「스터디그룹」로 지칭되는 의식화운동에 메스가 가해지면서 부산대교내시위사태(74년11월)를 끝으로 음성서클로 화한다.
75년부터 각대학의 학생회장, 선거제도가 임명제로 바뀌면서 굳어진 대학분위기속에 「스터디그룹」이 파고들어갈 구멍을 찾지못하게 되자 또다른 형태로 나타난것이 이른바 「양서 (양서)조합」이다.
부산에서는 78년3월 「스터디그룹」이 「양서조합」이란 이름으로 대학을 뛰쳐나와 전사회적인 조직으로 다시 되살아난다. 주축 멤버들은 종교인을 비롯, 언론인 법조계 대학생 의사등 지식층 계급으로 그 출발을 봤다.
이시기를 분기점으로 이념서클로서의 「스터디그룹」은 그룹 본연의 성격이 변질, 새로운 길로 들어서게 된다. 당시 부산시내 「양서조합」회원은 5백30명.
이들 멤버 한사람이 대학안의 일반 서클회원50∼1백명정도는 거뜬히 손아귀에 쥐고 흔들수 있을정도로 이론으로 무장된 정수멤버들이다.
서클회원들은 자진탈락 또는 제적등으로 2학년 진급때는 통상 10∼15명정도가 남는다. 이중 장차 리더로 활약할 멤버는 선배들로부터 「여왕봉교육」이란 이름의 특별리더양성교육을 받으며 나머지 멤버는 신입생포섭및 양성반·시위등을 주동하는 활동반으로 역할을 분담한다. 여왕봉교육이란 장차 서클의 지도자가 될 학생을 외부에 노출시키지않은채 이념과 사상교육을시켜 배후에서 조직을 지휘·통솔토록 하는 것이다.
2학년2학기가 되면 3학년리더는 「여왕봉교육」으로 양성된 2학년리더와 정권인수인계를 한다. 2학년2학기 한학기동안 선후배가 공동리더를 하다 3학년이 되면 완전히 후배에게 리더역할을 넘겨준다.
이같은 움직임속에서 79년10월16일 부마사태 역시 이들이 주도하게 되고 그후 이로 인한 반작용으로 학원안 서클규제가 더욱 강화되자 음성 서클단계에서 지하서클로 숨어들어 지금까지 대학가에 뿌리를 번식시켜 나온것이다.
「양서조합」은 80년5·17조치이후 된서리를맞아 하나씩 해체되었으나 「양서조합」과 연결된 「스터디그룹」은 지난해 4월17일과 6월11일 부산대의 학원소요사태를 야기시켰고 지난해 7월부터 9월사이에 있었던 서울의 「무림사건」, 부산의 「부림사건」으로 이어진다.
의식화운동교육과정은 l단계에서 7단계로 구분되며 포섭대상은 사회과학도가 아닌 자연계·인문계학생들이었다. 단계별교육과정은 ▲1단계=인물선정작업으로 포섭회원들에게 쉽게읽을수 있는 사회과학의 기초서적을 읽힌다. ▲2단계=1단계에서 선정된 인물들에게 양서안내를 하게되며 책들은 대부분 역사를비롯, 철학 서양사 근로기준법 혁명관계서적 민중봉기사등에 관한것들이다. ▲3단계=포섭원 인물들이 이 운동에 매력을 느낀듯한 눈치를 보이면 본격적인 교육방법으로 1주일간의 합숙교육용 방학기간을 이용해 실시한다. 주로 장소는 해수욕장·사찰등을 이용하고 남녀혼성팀으로 구성, 이성끼리 어울리도록해 지루함을 느끼지 않도록한다. ▲4단계=「자유가」「노동가」등의 가사를 찬송가곡에 붙여 의식화교육에 필요한 분위기로 이끈다. 그러나 무서운 것은 4단계까지 교육을 끝낸 인물들은 교수의 이야기는 모두 「×××」들의 이야기로 들리게되고 학교에서의 순화지도단계도 이미 지난다는 것이 관계전문가들의 이야기.
뿐만아니라 가정까지 외면, 부모와 형제간의 거리도 멀어지는등 모든 일을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이있다는것. ▲5단계=4단계까지 학습한 것을 시험하는 단계로 스스로 자생조직을 만들어 자신도 하나의 의식화운동 서클을 이끌어 나간다. 이번 사건의 주범 문역시 이 단계에서 「샛별」이란 지하서클을 조직, 범행을 저지른것이다. ▲6단계=일방 통행식으로 위에서 지시한것을 그대로 행동에 옮기는 단계 ▲7단계=결정적 시기에 봉기를 한다는 최후단계로 전문가들은 미문화원 방화사건및 비라살포사건 역시 5단계에서 문이 지하서클을 만들고 6단계에서 7단계로 넘어가는 과점에서 이같은 범행을 저질렀다고 분석하고 있다.
이같은 의식화운동은 거의 모든 서클에서 행해지고 있으며, 특히 과격폭력행동을 서슴지않는 지하서클 또한 정확한 숫자는 파악되고 있지않지만 모든 대학에 퍼져있다는 데 학생문제의 심각성이 있다고 당국은 보고있다. <임수홍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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