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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도심 재개발, 대증요법으론 안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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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유럽에 가본 사람은 누구나 도시 중심에 있는 '올드 타운'(구도심)의 아름다움을 잊지 못한다. 도시 외곽의 현대식 뉴 타운과는 달리 고풍의 매력적인 올드 타운에는 늘 관광객이 붐빈다. 전설이 새겨진 좁고 구불구불한 돌길. 양 옆에 다닥다닥 붙은 중세풍의 나지막한 건물들. 그 사이에 작은 박물관과 골동품 가게. 그러다 동화책에 나올 법한 분수 광장에 이르면 늘 공연이 펼쳐지고 그 뒤편으로는 오래된 '구 시청 청사'가 있다.

최근 우리의 지방에서는 죽어가는 구도심을 살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대전과 천안, 광주와 순천, 전주와 군산이 이 문제로 시끄럽다. 대부분 도청.시청.경찰청사.법원 등이 외곽으로 이전했거나 이전 중이다. 터미널을 비롯한 각종 대형 시설도 속속 옮기면서 구도심의 상권이 죽고 있는 것이다.

물론 지자체들은 대책을 세워 구도심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복합테마단지를 조성하고, 환경 개선과 기반시설 정비를 위한 조례를 제정하며, 자치단체의 돈을 투자해 비어가는 구도심에 공원과 문화광장을 만드는 등 사람들이 다시 찾는 구도심으로 되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전주시도 도청과 경찰청 이전으로 비어버린 구도심을 문화의 거리로 만들겠다는 구상을 실천 중이다. 거리를 공원화해 작은 숲과 휴게.오락 공간을 만들고 미니 공연장과 만남의 장소를 조성하는 한편 기존의 영화의 거리, 차 없는 거리, 웨딩 거리, 차이나타운 등과 연계해 문화 중심으로 되살리겠다는 것이다. 구도심 활성화 지원조례도 제정해 각종 시설 보수를 위한 재정지원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유동인구 유입과 상권 부활은 크게 기대하기 어려운 게 솔직한 현실이다. 무언가 문제가 있다. 가장 큰 문제는 구도심 재개발이 관 주도의 졸속 행정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선거 때 표를 의식해서인지 정비사업의 핵심도 기존 상권의 불만에 대한 대응인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상인의 요구만 있으면 계획이 바뀐다. 차 없는 거리, 한옥마을의 보존도 장사가 안 된다는 항의 앞에서 당초 계획을 바꿔버렸다. 작은 예지만 광범위한 여론 형성과 장기적 문화 비전 없이 수시로 바뀌는 구도심 개발의 양태는 다른 도시도 마찬가지다.

도시는 생명체다. 몸을 다루듯, 한 부분이 아프면 유기체의 생명과 순환을 고려하며 근본적 진단과 장기적인 처방부터 먼저 내려야 한다. 신도심의 조급한 조성도 문제지만 여러가지 문제가 얽혀 있는 구도심의 공동화도 대증요법의 단기 처방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것이다.

전통과 문화의 도심은 하드웨어를 정비한다고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 이미 지역의 문화와 고유한 전통은 일제를 거치고 60, 70년대 마구잡이 개발 과정을 거치면서 파괴될 대로 파괴된 상태다. 유럽과 우리의 지방 도시는 너무도 다르다. 보여줄 것이 없고 그나마 남은 것은 서울로 가고 없다. 그럴수록 더더욱 민관 합동의 종합적이고 장기적인 대책 수립이 먼저일 것이다.

서유석 호원대 교수.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