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공부 쉬워요] 기업이 왜 사회공헌활동 하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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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G전자의 김쌍수 부회장(맨 왼쪽)등 경영진과 노조가 서울 전농동에 있는 "다일복지재단"에서 "밥퍼운동본부" 지원 약정식을 한 뒤 배식을 돕고 있다.

▶ 삼성전기 강호문 사장이 삼성 사회봉사단 창단 10주년을 맞아 공부방에서 어린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 (주)한화 임직원들이 서울 신길동 도보스꼬 청소년센터의 지붕 수리 등 주거 환경 개선 자원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해마다 연말이면 불우이웃 돕기 운동이 벌어지곤 하지요. 이때 많은 사람이 훈훈한 인정을 발휘합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십시일반 정성을 모으는 손길이 따뜻합니다. 중요한 것은 정성이겠지만, 사실 모금액만 놓고 보면 개인 성금의 비중은 30% 정도에 불과합니다. 대부분의 금액은 기업이 내는 기부금이라는 이야기죠.

기업의 기부금은 연말연시 성금에만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태풍.홍수.가뭄 등 자연재해가 발생했을 때나 대형 사고가 터졌을 때도 기업들은 성금을 냅니다.

기부금을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임직원들이 직접 나서서 봉사활동을 펼치기도 합니다. 이렇듯 기업들은 생산.판매.서비스 등 본연의 기업활동을 떠나 여러 가지 사회공헌활동에 나설 때가 많습니다.

기업의 사회공헌활동은 성금이나 봉사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닙니다. 문화예술활동을 지원한다든가(이런 예술지원을 '메세나 활동'이라고 합니다), 대학에 건물을 지어준다든가, 가난한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는 등 다양하게 전개됩니다. 결식아동 돕기 운동, 정보 소외 극복을 위한 컴퓨터 보급 운동, 쓰레기를 줍고 나무를 심는 자연보호운동 등 웬만한 캠페인에도 기업들이 참여합니다. 좋은 뜻을 펴는 데는 돈이 들기 때문이죠. 최근 들어 기업들은 관련 전담부서를 만드는 등 사회공헌활동을 더욱 강화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틴틴 여러분, 혹시 기업들이 왜 이런 사회공헌활동을 하는지 한번 생각해 보셨나요. 사실 기업의 고유한 목적을 사회공헌이라고 보기는 힘듭니다.

기업은 무엇을 하는 곳입니까. 제품을 생산해 팔거나 서비스를 제공해 돈을 버는 일, 즉 이윤을 창출하는 조직이지요. 이윤을 만들기에도 바쁜 기업이 사회공헌활동은 왜 하는 것일까요. 바로 기업의 이미지 때문입니다.

기업은 커질수록 사회적 이미지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어떤 기업이 돈 버는 데에만 급급해서 사회적으로 지탄받는 방법을 쓰거나 해를 끼치는 일을 하면 소비자들은 이 기업이 만든 제품을 외면해버립니다.

가령 유명한 다국적회사가 동남아 공장에서 어린이 노동자를 썼다고 해서 선진국 소비자들 사이에서 그 회사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이 일어나기도 했었죠.

'악덕 기업'이라는 평가를 받으면 그 기업은 정상적인 기업활동, 즉 이윤창출활동도 어려워집니다. 그래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다는 좋은 이미지가 소비자들에게 심어지기를 기업들은 바라게 됩니다. 이런 사회적 책임을 기업시민정신(Corporate Citizenship)이라는 개념으로 풀이하기도 합니다. 개개인이 시민의 의무와 도덕을 지키듯이 기업도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책임을 다한다는 것이죠. '노블레스 오블리주'(기득권층이 마땅히 해야 할 사회적 책임이라는 뜻)라는 단어와도 맥이 닿아 있지요.

기업의 사회공헌활동은 반(反)기업 정서를 해소하는 데에도 도움이 됩니다. 흔히 기업은 목적을 위해 다른 기업이나 근로자, 소비자 등에게 손해를 끼치는 부도덕한 짓도 서슴지 않는다는 의심이 반기업 정서를 만듭니다. 정부와 결탁하는 방법으로 덩치를 키웠던 과거 우리 기업의 역사 때문인지 한국 사회의 반기업 정서는 유독 심하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사회공헌활동은 이런 정서를 누그러뜨리는 역할을 합니다.

지금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개념이 당연한 듯하지만, 사실 역사적으로 보면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이런 개념을 정착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한 사람이 19세기 말 미국의 공업화 초기 큰돈을 벌었던 앤드루 카네기와 존 록펠러였습니다. 각각 철강산업과 석유산업을 통해 부를 거머쥔 두 사람은 부의 사회환원에 대한 철학과 전통을 닦았습니다.

카네기는 '부의 복음'이란 기고문에서 "재산을 안고 지구의 품으로 돌아가는 사람은 천국에서 명패를 찾을 수 없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두 사람은 사업을 하면서 약간의 불공정한 방법을 쓴 것도 사실입니다만, 노년에 확고한 자선 철학으로 존경받는 기업인으로 이름을 남겼습니다.

사회공헌활동은 기업 입장에서 무조건 착한 일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공헌활동을 자신의 사업과 연관지어 기업 이미지를 높이기 위한 유용한 전략으로 활용하기도 합니다.

가령 미국의 발전업체인 AES는 지구 온난화를 막기 위해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고, 건축자재를 다루는 미국의 유통업체 홈데포는 해비탯(사랑의 집짓기) 운동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나무에서 원료를 추출해 화장지를 만드는 기업이 나무심기 운동을 하고 있지요.

기업들이 사회공헌활동을 열심히 한다는 사실을 언론을 통해 알리고 싶어하는 것도 바로 이미지 전략 때문입니다. 적어도 기업의 사회공헌활동에서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경구는 통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이런 사회공헌활동을 '생색내기'로 깔보면 곤란합니다. 생각해보십시오. 기업들의 활동을 아무도 평가해주지 않는다면 이런 기업의 활동은 확 줄어들 것이고, 결과적으로 기업의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나 단체들만 아쉽게 되지요. 결국 기업의 이런 활동에 대해 격려하고 박수를 쳐주는 것이 사회적으로도 이익이 됩니다.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기업의 사회공헌활동은 분명 중요하지만, 엄밀히 말해 기업의 본래 목적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기업이 사회에 할 수 있는 가장 큰 공헌은 이윤창출을 통한 일자리 제공이 아닐까요? 자기 할 일도 제대로 못하면서 남을 돕겠다고 나서는 것은 우습기도 하거니와 가능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경영학의 대가인 피터 드러커는 "귀사 임직원 중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부르짖는 사람이 있으면 당장 해고하라"는 말까지 했습니다.

본류와 지류를 혼동하지 말라는 것이겠지요. 이런 점에서 보면, 기업의 사회공헌활동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겠지만 그 구체적인 방법과 형태는 기업에 맡겨야 합니다. 무조건 사회에 공헌하라고 강요했다가는 기업 본래의 활동이 위축되고, 기업활동 위축은 일자리를 잃게 되는 역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이지요.

이현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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