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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사 '비싼 기름 덜쓰기' 고심, 화장실 물까지 줄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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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지난달 초 아시아나항공 비행기를 타고 미국 시애틀로 출장을 갔던 회사원 최모(37)씨는 기내 전광판이 보여주는 비행 항로를 보고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 평소 알고 있는 항로와 달랐다. 과거에는 일본을 통과해 북태평양을 건넜다. 하지만 비행기는 러시아 영공을 지나고 있었다. 예전엔 러시아 영공 통과료 부담 때문에 돌아서 갔다. 항로를 바꾼 이유는 하루게 다르게 치솟는 기름값을 아끼기 위해서다. 항공유는 연초보다 배럴당 20달러 이상 올랐다. 100㎞당 87달러인 영공 통과료를 러시아에 내더라도 현재 유가 수준으로 계산하면 편당 약 2000달러 이상의 비용을 아낄 수 있다. 대한항공 역시 미국 서부지역 운항 노선의 경우 기존에 이용했던 북태평양 항로 대신 최근 러시아 영공을 통과하는 캄챠카 항로를 주로 이용한다.

항공사들은 인천~프랑크푸르트 노선의 항로도 단축했다. 비행지역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아래인 '모스크바'로 바꿨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항로는 비행지역의 기후 등 여러 가지 다른 변수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되지만 최근엔 유가가 가장 중요한 고려사항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같이 비행 연료비가 총비용의 25%가 넘는 국내 항공사의 기름값 절약 노력은 필사적이다. 올해 항공유 2600만 배럴 소비가 예상되는 대한항공은 연평균 유가가 1달러만 올라도 연간 260억원를 더 부담한다. 대한항공의 연료관리팀과 아시아나항공의 '위험관리위원회'가 기름값 절약안을 짜낸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이 비행기 '무게 줄이기' . 불필요한 물건을 싣지 않고 무거운 물품은 빼내고 있다. 최근엔 화장실 등에 쓰이는 물도 줄였다. 이렇게 해서 인천~북경 노선은 약 600㎏의 중량을 줄여 연료비 1만6000원를 아끼고 있다. 비행기 중량 배분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 가급적 승객이나 짐을 뒤쪽에 배치한다.

항공기의 중심이 앞에 쏠리면 무게 중심을 잡아주는 뒷날개 트림이 작동해야하고 이 때문에 연료를 더 쓴다. 또 지상 활주 시간을 줄이기 위해 이용하는 공항 터미널도 바꾸고 있다. 아시아나 항공은 최근 일본 나리타(成田) 공항에서 이용하는 터미널의 위치를 71번에서 활주로와 가까운 63번으로 옮겼다.

대한항공은 연간 항공유 구매량의 30%까지를 선물거래를 통해 확보할 수 있게했다. 유가급등에 따른 위험을 줄이기 위해서다. 한편 다음달부터 유류할증료 부과가 모든 국제항공노선에 적용돼 국제선 항공요금이 최대 30달러(단거리 15달러) 정도 오를 전망이다.

윤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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