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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한잡기|은행융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서민의 눈으로 보면 그저 거물이기만 한 은행은, 그 본점은 말할 것 없이 간이예금취급소에 이르기까지, 가장 교통의 요충지에 훌륭한 건물, 맨 아래층 편리한 자리에 깨끗하게 자리잡고 있다. 고객을 상대로 하는 은행창구는 어느 친절한 민원창구보다 친절하다.
그것도 그럴 것이, 은행에 있어 고객은 왕이니까. 그러나 실제로 고객이 은행의 왕이 될 수 있는 경우란 어떠한 때일까? 관계당국이나 기관에서는 서민과 중소기업을 위해, 은행의 턱을 낮추기 위해 적지않이 배려를 하고 있는 듯 하지만, 어느 만큼 공정하게, 공평하게, 그리고 순조로운 혜택을 이들이 골고루 받고 있는지 나는 모른다.
이렇게 말하는 나 자신, 은행의 신세를 져본 일이 있다. 사정이 있어, 거금 5백 만원을 융자받은 것이다. 집안에 행원이 있고, 은행에 몇몇 친지를 갖고있는 덕분으로, 그다지 은행 문이 높다는 것을 실감하지 않고, 요즘 신문지상을 떠들썩하게 한, 커미션 떼어주는 일 없이 거뜬히 끌어낼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나도「작은 특권층」쯤에 속했던 것일까? 하지만, 행원인 집안아이의 생색이 커미션만큼 대단(?)했다.
제 털 뽑아 제구멍에 갖다 맞추듯 살아가는 우리네에게 있어, 그러나 선이자다, 감정비다 뚝 떼어놓고 받아 쥔 돈은 받아 쥔 순간부터 당황하게 했고, 달이면 달마다 꼬박꼬박 갚아야 하는 이자는 저속한 표현을 빌면「눈알이 튀어나오게」했다. 그만한 액수면, 얼마큼 신나게 마실 수 있나 따지기에 앞서, 그것을 벌자면, 얼마큼 원고용지를 메워야 하나 그저 억울하기만 한 것이다.
기일이 자칫 늦으면 연체이자 붙는 건 말할 것 없이, 1년인가 1년 반의 원금 상환일자는 후딱 다가온다. 그 조바심과 초조함을 무엇으로 비기면 좋을까. 요행 그 기일을 넘기지 않을 수 있어 다행이었지만, 이를 어겼더라면 어찌되었을까? 은행측의 빗발치는 독촉은 말할 것 없이, 역시 언젠가 신문지상에 떠들썩했던 것처럼, 몇10만원의 부채로 몇천 만원의 담보물이 남의 손으로 넘어가서 길 밖으로 나앉는 꼴이 되지 말란 법도 없었을 것이다.
대기업이야 원금 상환 못 하면 그 든든한 담보물 재평가, 재 감정해서 빚 갚기 위해 빚 더 내주기도 하고, 정 안되면 은행관리도 하고, 이래도 안되고 저래도 안되면 결손 처분하면 되는 것이지만, 이렇게 해서 결손 처분된 것. 은행마다 어느 만큼 되는지,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되었는지 알고싶다.
그러기에 미국의「제퍼슨」이든가,「잭슨」대통령이든가, 은행은 부호들의 이익을 도모하고 서민들을 괴롭히는 기관이라고 신념한 나머지 합중국 예금을 몽땅 인출하라해서 큰 소동을 일으켰다는 일화를 읽은 기억이 난다.
그거야 극단적인 예라 하겠지만, 우리 서민들이야 허리띠 졸라매고, 되도록 많이많이 저축해서, 호박씨 까서 한입에 넣듯, 대기업의 입에 들어갈 망정 자본의 재투자효과의 혜택이나 받으면 다행인 것인지, 어떤 것인지…. 홍성유<작가>
▲28년 서울출생 ▲서울대법대수료 ▲58년 한국일보장편『비극은 없다』당선 ▲장편『사랑의 기수』『욕망의 계단』『비극은 있다』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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