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방의 초점은|자백의 임의성| 박상은양 피살…정재파군 내일 첫 공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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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여대생 박상은양(21)피살사건의 첫 공판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J군으로 표기했던 장경수군(22·K대3년)이 검찰에서 정재파군(21·I대3년)으로 뒤바뀌어 구속된지 꼭 54일.
서울 원효로 윤노파 피살사건의 피고인 고숙종씨에 대한 무죄쇼크가 아직도 생생한 가운데 막을 여는 이 사건 재판은『제2의 고숙종과 같은 결과는 있을 수 없다』는 검찰의 자신감과『무죄판결을 받을 수 있다』는 변호인만의 자신감이 맞부딪쳐 불꽃튀는 법정 공방전이 예상된다.
피고인 자백의 임의성이 문제가 됐던 윤노파사건의 가까운 선례(선례)를 의식하고있는 검찰은 정군 자백의 증거능력에 대해 그 사건과는 차원을 달리 한다고 말하고 있다.
즉, 임의성 해석을 놓고 상급심이『조사하는 사람의 심리상태보다 조사 받는 사람의 심리상태』를 중시하고있는 최근 경향에 비추어서도 정군의 자백은 지극히 자연적인 심리상태에서 받아낸 것이란 주장이다.
특히 정군을 범인으로 단정하기까지 검찰의 수사방법은『이러저러한 경황으로 보아 범인이다』하는 귀납적(귀납적)방법이 아닌『그러나 범인이 아닐 수도 있지 않느냐』는 반문에서 시작, 『결국 그가 범인일 수밖에 없다』는 연역적(연역적)귀결을 취했다는 점에서 방법상으로도 자신이 있다는 것이다.
또 검찰은 정군 자가용승용차의 시트커버에서 발견된 박·양의 것과 같은 O형 혈흔은 이사건의 공소유지를 부동의 것으로 하는 직접증거로 충분하다고 보고 있다.
검찰청주변에선「비장의 무기」설까지 나오고 있다. 공판이 몇 회를 거듭될지 모르지만 상대가 끈질기게 물고 늘어질 경우 단 한방에 녹아옷시킬 수 있는 히든카드가 있다는 것이다.
현재까지는 과학적 채집방법으로 확보한 정군 숙모와 정군 어머니간에 오간 은밀한 대화내용과 사건당일 삼정장 여관 앞에서 정군의 승용차와 정군이 뭔가를 옮기는 장면을 보았다는 목격자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디까지나 자신에 차고 느긋한 표정들이다.
일반적으로 공판개시 전까지는 검찰이 공격적인 입장에 선다. 그러나 일단 재판이 진행되면서부터는 공수의 입장이 바뀐다.
앞으로 검찰에서 제시된 증거를 하나하나 캐나가야 될 정군 변호인측의 취약점은『18일 현재까지 검찰의 기록을 단 한줄도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3명의 변호인들은 공통적으로『무죄의 심증을 굳혔다』고 한다. 아직은 검찰기록을 중심으로 한 구체적인 공격자료를 갖추지 못했으나 그동안 10여 차례에 걸친·정군접견 에서 파악한 사건전모만으로도 그가 범인이 아님이 틀림없다는 주장이다.
심지어 정군의 진술이 일관된 부인(부인)뿐이어서 변호인들은 정군 부모의 양해아래 위장질문까지 던져보기도 했다는 것이다.
변호인들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검찰이 네가 입었던 바지에서 박양의 시체를 묻었던 인조석더미의 돌가루를 추출했다더라』『검찰이 사건날밤 네 자가용차를 여관 앞에서 보았다는 목격자를 확보했다는데 심각한 문제다』등의 유도질문을 해보았다.
그래도 정군은 동요의 빛이없이『그럴리가 없다』며 자연스럽게 부인하더라는 것이다.
사건발생 1백28일만에 범인이 바뀌는 역전 드라머를 연출했던 이 사건이 또 어떻게 결판날지는 양심과 지혜, 평정의 법대(법대)에 맡기고 지켜볼 일이다.
재판장 양기준 부장판사는 고시13회로 경기고·서울대법대 출신. 민·형사재판부를 고루 거치면서 침착하고 차분하게 재판을 이끌어나가는 노련한 법관으로 정평이 나있다. 변호인단의 변갑규 변호사와는 경기고 선 후배관계.
수사 지휘팀 이었던 강원일 부장검사는 호남전기 억대탈세사건을 비롯, 굵직한 사건을 해결한 꼼꼼하고 빈틈없는 수사검사. 박양 사건에서는 조병길·이종왕 두 검사가 수사한 정군 용의점을 놓고『그렇다고 법인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 허수(허수)를 보완하라』는 등의「야당」입장에서 수사를 지휘했다는 후문. 한편 변호인단의 변갑규·나정욱·윤태방 변호사는 세칭 재야법조계의「40대 기수들」변·윤변호사가 검사출신이고 나 변호사는 판사출신으로 공동변호인단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
아들의 첫 공판을 하루 앞둔18일 정군의 아버지 정진혜씨(52·H개발상무)는『그 애가 법정에서 사실대로만 말해주면 무죄다. 그 이상, 그 이하의 전략도 필요없다』고 했다.
지금까지 10여 차례 면회했고 정군이 책을 읽고 싶다고해『2차 대전실록』과 수필집 몇 권을 차입했다고.
면회때마다 그는 친구의 안부를 묻는가하면 부모를 안심시키고 구태여 사식을 넣을 필요가 없다며 태연한 자세였다고 정씨 말했다.
한때 곤욕을 치렀던 장경수군은『19일 공판엔 방청할 생각도, 이유도 없다』고 잘라 말하고 『사건자체를 잊으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재파와는 친한 사이가 아니어서 특별히 그의 근황에 대해 관심을 가진 일이 없다』면서『그러나 사건결과는 주의 깊게 지켜보겠다』고 했다.<김창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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