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詩)가 있는 아침 ] - '노숙'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1면

김사인(1956~ ), '노숙'

헌 신문지 같은 옷가지들 벗기고

눅눅한 요 위에 너를 날것으로 뉘고 내려다본다

생기 잃고 옹이진 손과 발이며

가는 팔다리 갈비뼈 자리들이 지쳐 보이는구나

미안하다

너를 부려 먹이를 얻고

여자를 안아 집을 이루었으나

남은 것은 진땀과 악몽의 길뿐이다

또다시 낯선 땅 후미진 구석에

순한 너를 뉘었으니

어찌하랴

좋던 날도 아주 없지는 않았다만

네 노고의 헐한 삯마저 치를 길 아득하다

차라리 이대로 너를 재워둔 채

가만히 떠날까도 싶어 네게 묻는다

어떤가 몸이여



우리는 더러 타자의 시선으로 자신의 생을 되돌아볼 때가 있다. 지금 살아내고 있는 삶이 과연 바르고 온당한가, 하는 의문이 문득 일상 속으로 얼굴을 내밀어 올 때가 있는 것이다. 까닭 없이 시간을 낭비한다는 죄책감에 시달릴 때도 있을 것이다. 몸만이 유일한 재산이므로 천금처럼 그를 아껴야 하나 생활은 그것을 허여하지 않는다. 그러니 몸의 노고가 얼마나 심하겠는가. 오후의 생을 걸어가는 이들이여, 찬물 한잔 뜨겁게 마시자.

이재무<시인>

ADVERTISEMENT
ADVERTISEMENT